장마의 소멸

일쌍 2006/07/31 11:11 Posted by 버트
내 생애 서른 다섯번의 장마가 지나갔다.
장마라.
대개 기억이 나지 않거나 기억이 난다고 해도 그것은 장마로서가 아니라 재앙으로서이다.
재앙이라.
물이 늘 부족한 나라에게 장마는 고마운 존재임에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망만큼 비를 뿌리지 않아 원성을 사곤한다.
그런 이유로 장마는 인간의 삶을 닮았다.
1년동안 유독 여름한철 무던히 도시빈민들의 속을 썩이며 끊임없이 내리는 비.
자신만이 잘난 줄 알고 무던히도 부모의 속을 썩이며 인생을 낭비하는 청춘들.
닮았다.
이제 자신의 진가를 안 인간들은 여름 한철 살다 지는 베짱이처럼 뜨거운 햇살 아래
모처럼 전력투구를 하게되겠지.
하지만, 진짜 뜨거운 여름은 잠깐 어느 새 가을이 다가온다.
이제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의 이마엔 어느새 주름이 파인다.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늦여름인가.
아님, 완연한 가을일까.
엄청나게 많은 량의 비를 뿌리고 소멸된 올 해 장마를 본다.
내 삶의 비를 뿌리며 거침없는 질풍노도를 구가하던 장마는 이미 소멸되었는가.
그렇다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내 삶의 장마가 끝났다면 나는 정말 곤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름내내 기타를 치며 모내기조차 안한 짐승들에게 추수의 계절이 다가온다는 것은
몹시도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삶의 장마는 단 한번 뿐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격렬한 비를 뿌리던 장마가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서서히 갈증을 호소하게 된다.
샘이 말라버린 마을엔 더 이상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말라갈 것이다.
한 해살이 짐승인 2006년이 죽어도,
2007년엔 또 어김없이 녀석에게 걸맞는 장마가 찾아올테지만,
내게 지나간 장마는 이제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장마가 오지 않으면 식물들이 자랄 수 없다.
안의 사고들은 이제 성장을 멈춘지 오래다.
그것들은 이미 갈증을 호소하고 있다.
말라가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
자신의 사고가 죽어가는 것을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잔혹한 일이다.
정말 슬픈일인 것이다.





by 'Vert



태그 :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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