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를 보다

영화 2007/03/21 11:43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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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헌법에 명시된 행복 추구권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인간이 이 지구상에 처음 그 모습을 보인이래로 그것이 단 한 번도 실현 가능한 적이 없었다. 헌법은 늘 이렇게 일상에서 전혀 일어날 같지 않은 사실을 마치 우리 모두가 추구할 권리인양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빈곤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헌법쪼가리에 명시된 행복추구는 권리이지만 이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상을 쫓아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해가 뜨기 무섭게 생활전선에서 온몸을 불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처럼 홈리스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헌법에 쓰여 있는 문구는 사실인지 모른다. 우리는 정말 누구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할 권리는 ‘누구나’가 아닌 ‘누군가’에게만 있다. 즉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행복을 추구하다 죽는 것이다. 광부가 갱도에서 죽어가듯이 우리는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똥줄 타게 생업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넘쳐도 행복을 영위할 권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추구할 부류와 영위할 부류가 나뉜다. 그것이 자본주의다.

영화를 보면 크리스 가드너가 별거에 들어가고 자신이 살던 집과 몰던 차를 빼앗기는 것은 그가 무능해서이지 절대 사회적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의 버그가 생기면 프로그래머를 탓해야 하는데 버그를 탓한다. 매미 때문에 소음 가득한 여름도시가 된 이유를 매미 자신에게 돌린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의사소통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불안한 것뿐이다. 지하철에서 소리 높여 전화를 받는 것이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기보다 전차 안이 자신의 거실보다 상대적으로 시끄럽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크리스 가드너의 성공시대를 보면서 우리가 공감해야 할 부분은 그의 성실성일 게다. 그가 난관을 극복하는 동력으로 자신의 근면과 성실을 이용했다면 대개 그렇지 않은 보통의 서민들은 성공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뒷덜미를 간질인다. 그는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결국 운이 좋았던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도시 빈민, 그것도 별다른 직업적 경험이 없는 흑인남성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는 성공담을 보여주면서, 너희도 열심히 하면 가드너처럼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주입식 교육은 학창시절로 족하다. 서민은 가난한 집단일 뿐이다. 결코 머리가 나쁜 집단이 아니다.

감동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을 원한다면 차라리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보는 게 현명하다.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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