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 누가 진정한 양심인가

영화 2007/04/02 14:11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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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Peeping Tom!

영화의 처음은 몹시 흥미롭게 전개된다. 슈타시 Stasi 에서도 이름 있는 꽤 유명한 요원인 비즐러가 누군가를 심문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심문과정을 녹음해 학생들에게 그것을 토대로 강의를 한다. 그렇다. 그는 대학교수인 동시에 비밀경찰이다. 처음 이 시퀸스는 몹시 흥미롭다. 강의실과 심문실을 교차 편집해 슈타시의 유능한 요원이 행동이 의심되는 사람을 다루는 요령을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한다. 심문 시간이 너무 길다고 투정하는 학생의 출석표에 x마크로 표식을 해두는 주도면밀한 그의 삶은 솔직히 내가 아는 어떠한 사람들보다 전문적이고 인간적이다.

그가 결국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변절하고 마는 라스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런 의미에서 지루한 사족에 가깝다. 영화는 몹시 지루했으며 끝을 짐작할 있는 전개는 영화 시작과 함께 느꼈던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을 떠나 아주 냉각시켜버렸던 것이다. 유능한 요원이 무능하고 비루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고문이었다. 자유가 억압되는 삶 속에서도 솔직히 작가 드라이만은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다 사회주의를 가장한 독재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작자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동거녀가 돼지 같은 정부인사에게 유린을 당하는 것도 동거남인 주제에 제대호 억제하지 못하는 흔하디 흔하고 널리고 널린 조잡한 지식인이었다.

솔직히 비즐러가 그러한 별 볼일 없는 시인에게 접근하면서 삶이 붕괴된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스스로의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사람을 심문하고 그것으로 얻은 데이터로 또 다른 사람을 심문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나름의 시스템을 구축한 그는 나름대로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오는 상실감을 별 볼일 없는 작자의 삶을 감시하면서 위로받게 되었던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유를 갈구하지 않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비즐러는 일종의 실험을 하게 된다. 질랜드와 드라이만의 동거, 당시 DDR 사회에서 나름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존경받는 예술가의 집을 자신의 실험실로 꾸민다. 성공이 보장된 독재사회에서의 작가적 위치를 연금중이던 동료작가의 자살로 포기할 수 없었던 드라이만이다. 그가 독재의 단물을 빨아먹는 것을 중단하고 위험을 감수하게 된 동기도 사실은 동거녀 질랜드의 귀환에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만의 힘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믿었던 그가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녀가 돌아온 것은 비즐러의 실험에 일환이었다.

당대를 주름잡던 예술가가 진정한 자유를 꿈꾸게 되는 이유가 거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변절(DDR의 정책으로 비춰보면)을 탐탐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자신이 과거에 이루었던 모든 예술적 업적이 결국 비즐러 같은 비밀경찰요원들이 동포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눈부신 책략에 근거하여 이뤄진 것임을 간과했던 것이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자유를 효과적으로 억압하는 과정을 직업으로 삼아 세상을 살았던 그의 삶이 상대적으로 체제를 잘 순응했던 예술가의 삶보다 평가절하 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는 다만 불법도청의 권위자요 그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인을 심문하는 기술자였을 뿐이다. 그는 독재정권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가 그런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드라이만 같이 예술적 성과를 드높인 효과로 사회적으로 상당한 평판을 얻은 지식인들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통일 독일에서 침몰 돼야 할 위인은 비즐러 뿐만이 아니다. 드라이만도 같은 운명을 걸었어야 한다. 체제가 바뀌어도 침몰하지 않는 사람은 비즐러처럼 양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양심적인 변절자는 그렇기에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따위 지루한 영화 따위에 한가롭게 박수칠 만큼 한국 사회가 늘 태평성대였으면 좋겠다.



버트




태그 :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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