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렌즈로 불만을 토로하는 한 여성을 고속촬영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상대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보면 유감스럽게도 그 상대는 바로 나다.) 도대체
이 여인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적당히 사귀다 적당히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인데 매번 헤어질 때마다 이런 것은 분명 에너지의 낭비다.
그러나 추악한 미녀의 이별선언을 다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독이 고속촬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심심했겠지.
여친과의
이별로 불면에 걸린 주인공은 뜻밖에 하루 8시간의 수면 시간을 줍는다. 인생에서.
그런 식으로 계산해보면 그가 죽게 되는 날까지 적어도 나보단 1/3의 인생을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롭군. 잠을 자는 것이 귀찮은 나
같은 사람들에겐 여간 흥미를 주는 낚싯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다.
사라진 애인보다 더 멋진
여친을 사귄다고 해도,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쇼비니스트적 기질이 다분한 색정광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것이 영화 속 인생이라는 것을 안다. 영화의 주제는 불면
극복, 새 여친 탄생일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을
알고 본다면 이 영화는 같은 섬나라 영화라고 해도 노팅힐처럼 노골적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을 숭배하는 영화보다는 한결 봐주기 수월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