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에 관한 6가지 이야기

  • Posted at 2007/08/02 17:20
  • Filed under 영화
  • Posted by 버트
디 워 (D-War, 2007)


1. 어떻게 볼 것인가.

잘 보면 된다. 더운 여름 심야 상영처럼 좋은 것 없을 것이다. 동네서 한 블럭정도 떨어진 곳에 개봉관이 존재한다면 축복이다. 더구나 심야는 가격도 20퍼센트이상 저렴하다. 금상첨화다.

2. 심형래는 영화감독인가.

영화감독이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쉬리' 가 태그라인으로 사용했던 '한국형 블럭버스터'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저력은 신지식인인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작업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규모영화에서 연기력만 지도하는 연출가와는 그 격을 달리한 말하자면 말그대로 음악, 미술, 연기, 조명 모든 분야의 감독들을 감독하는 인간의 자질을 스스로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3. 내러티브의 부실

말 그대로 넌센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인간들은 영화 한 편을 볼 때 좀 더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다잡고 영화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러티브가 부실하다니. 설렁탕 집에서 타바스코를 찾는 격이다. 이 영화는 드라마를 강조한 조선시대식 신파극이 아니다. 헐리우드에선 자다깨면 한 편씩 개봉하는 평범한 SF물이다. 심형래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누차 강조한 부분은 다름아닌 VFX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자화자찬이었다. 절대로 아카데미 각본상이나 감독상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없다. 시각효과나 음향효과, 더 바란다면 음악상정도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디워가 아카데미 기술상분야를 거머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것이다.)

4. 연기력의 실종

아쉽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영구아트무비는 연기력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 연기력을 이끌어 내는 것은 심감독의 역량이겠지만 그는 그러한 역량을 이끌기 위해서 단 1퍼센트도 자신의 정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의 머리속에 가득한 것은 제이슨 베어의 어정쩡한 몸짓이 라니라 부라퀴의 동선이나 LA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련의 작업으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다이얼로그 코디네이터 따위가 따라붙어 비교적 무난한 대사를 주고 받게 만든 점은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영어 대사가 나온 장면 모조리 유치했기에 이번 영화에서 미국배우가 자국언어로 대사를 주고 받는 것은 솔직히 '괴물' 도입부에서 미군꼴통과 한국배우가 주고 받는 대사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5. 한국 SF의 신화

요즘 신화라는 말을 쓰기 쉽지 않다. 싸구려 댄스그룹이 이미 그 멋진 단어를 선점해 그 단어가 가진 가치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마땅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솔직히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영화의 스펙타클함에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 심감독이 혹시나 발을 헛디디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강했다. 허나 그것이 한낮 노파심이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박력넘치는 시퀸스들. 솔직히 최고는 아니지만 대단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SF 영화제작의 변방국가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내고도 반신반의하는 나같은 인간들의 종잇장보다 가벼운 마음을 헤아린 감독의 고뇌를 말이다. 어쨌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곤란했다. 의심어린 눈으로 영화관을 찾았던 나는 그에게 미안함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6. 미국 흥행의 향방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극장수에 있을 것이다. 와이드 릴리스냐 리미티드 릴리스냐의 차이다. 와이드방식의 로드쇼라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신나는 이야기에 완벽한 스펙을 갖춘 SF물이 가벼운 내러티브의 불안함으로 몰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엔딩씬에 아리랑의 오케스트라 버젼은 한국사람에겐 식상하거나, 자칫 애국심의 유발차원에서 일부 삐딱한 인간들의 외면을 받을지 몰라도, 그 리듬의 원류를 헤아릴 수 없는 타부족출신의 인간들은 그저 웅장한 엔딩 스코어에 다름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이무기, 부라퀴, 여의주를 설명하는 시퀸스가 다소 루즈하게 흘렀다고 아쉬워 하는 사람들은 한국사람일 뿐이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전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그 설명자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를 돕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에필로그

심형래. 엔딩에 자신의 이름을 멋진 폰트로 스크린 가득 장식했을 때의 쾌감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비록 한국판 프린트에는 그의 구구절절한 작가적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스크린에 대롱대롱 매달려 화려했던 씬들에 어안이 벙벙한 관객들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지만, 나는 그 심정을 잘 알 수 있을것 같다. 미국내 흥행성공을 바탕으로 전세계적인 흥행열풍을 가져와 투자위축에 빠진 충무로의 펀드열풍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한 우물만 판 그의 열정에 조용하지만 몹시 긴 기립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