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 : 공포는 늘 내 안에 있다

영화 2007/08/03 12:44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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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007)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혼자 사는 친구가 치한에 의해 위험한 지경에 빠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그 자리에 그 대신 내가 대체 replace 되어 있다면 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리감응.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구겨넣는 작업을 통해 공포를 획득한다. 대리만족. 그리고 그것이 영화라는 점에 안도감을 느낀다. 현실이 아닌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잘 알다시피 1408은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을 영화환 것이다. 또한 1408란 호텔의 룸넘버임을 알게 된다. 공포를 유발시키는 일련의 작업으로 돈을 버는 친구가 있다. 작가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공포를 유발시키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믿지 않는다. 믿음의 결여는 결국 딸의 죽음으로 촉발된 냉소적인 성격을 완성시킨다.

1408. 돌핀호텔. 그곳에 숙박한 사람은 호텔의 개업이래 무수한 직간접적인 죽음으로 자유로울수가 없었다. 낚시 밥에 생선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희생되듯, 멍청한 작가도 자신의 믿음을 되새김질하기위해 불쾌한 위험을 감수한다.

자고로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는 분야를 거스르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는 동물이다. 크리스쳔들이라면 누구나 알, 신화속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보라. 살기좋은 에덴동산에서도 단 가지의 금지사항을 지킬 수 없었던 것도 어찌보면 작금의 인간들의습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아닌가 싶다.

돌핀호텔의 체크 인을 하는 순간 작가 마이클 앤슬린(존 쿠잭)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1408은 죽음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텔 매니져(사뮤엘 L. 잭슨)는 저승사자나 다름 없다. 그가 앤슬린을 말리는 것은 그의 죽음이 아직 정해진것 보다 이르기 때문인 것이다. 죽음을 정해논 규칙대로 실행해야 하는 저승사자의 입장에선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갈길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보통 곤란한 일이 아니다. 일종의 쿠테타다. 조물주가 정해준 순서에 따라 사이좋게 죽어줘야 할 인간들 아니던가. 일개 인간따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조절하겠다고 하는 것은 일만년가령 지속되어온 인간사 자연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시퍼 매니져는 그것에 합당한 벌을 준다. 그 벌은 죽음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공포를 믿지 않는 공포소설작가에게 공포가 갖는 의미와 자신이 추구하는 세상과의 간극을 일치시키는 일련의 작업 말이다.

철저하게 앤슬린을 농락한 루시퍼는 비서를 시켜 그의 항복을 강요한다.

"체크아웃 하시겠습니까?"

말하자면 이제 죽어도 되겠다는 뜻이다. 지난 한 시간동안 벌어진 고통을 재차 학습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믿고 살아가며 또한 자신의 팬들이 믿고 있는 세계마저 부정했던 이중적인 인간 앤슬린. 그는 과연 항복할 것인가.


우리는 이 영리한 영화의 결말에서 자신의 강박을 극복하려는 앤슬린의 선택을 수 있다.



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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