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브룩스 : 미국의 두 얼굴

영화 2007/09/12 13:19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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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브룩스 (Mr. Brooks, 2007)

알다시피 미국에서 시리얼 킬러 (연쇄살인자) 라고 하면 남자, 백인, 중산층이상, 30대이상으로 집약된다. 간단히 말해 먹고 살기 편안한 심삽대 남자백인이 살인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완벽한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류백인 사회의 열망은 평범하게 살아도 될 인간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긴다. 충분한 수입과 미래가 보장된 남자가 가정부나 요리사를 두며 살아도 될 것을 구태여 아내라는 귀찮은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 투입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티비를 자주 보지 않아도 거실 한 귀퉁이에 50인치 PDP 티비를 갖추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세를 생산하는 것은 보너스일 뿐이다. 이렇듯 잘 갖춰진 인생의 도구로서 삶을 완벽하게 조율해나가는 중산층 남자에게는 그가 쌓아 올린 가식을 지탱할 반대급부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살인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가식에 대한 증오다. 아무것도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아내와 자식 고급 주택과 세련된 자동차를 갖는 것은 주변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


미스터 브룩스의 인생도 잘 살펴보면 그의 아내와 자식은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드는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는 자신의 쪼개진 인격체일 뿐이다. 자식은 오히려 그러한 자신을 언제든지 살해할수도 있는 타자에 지나지 않는다. 브룩스가 집이라는 커다란 공간을 아내와 자식에게 내주고 별채에서 세라믹을 구워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결국 가족과 가족을 구성할 때 필요한 것들 (주택따위) 이 사실상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그 세상을 지탱하는 가정을 점거한 남자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세상을 온전하게 다음 남성들에게 물려주는 작업에 전력을 투구하느라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긴장된 근육의 이완은 인간에게 필요하다. 고도의 스트레스와 지배력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늘 이상범죄를 야기시키게 마련인 것이다. 알다시피 그런 범죄를 근절한 노력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저 범죄가 생기면 그 범인을 잡아 내는 성과에만 급급하다. 범인의 색출은 계급사회에서의 진급을 이야기하며 진급으로 얻는 효과는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사악한 범죄를 관객에게 어필하며 장당성을 전달하기 바쁘다. 당대를 호령했던 배우를 두 명이나 캐스팅한 이유는 한가지다. 관객 역시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되며 동시에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에 스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수 많은 살인을 저지를 것임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미스터 브룩스와 미국 정부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자기 최면과 자기 합리화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식이 있다면 가장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영화가 아닌가 싶다.



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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