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쿠퍼. 영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1999)' 에서의
강렬한 연기를 기억한다. 겉모습만 마초인 퇴역 대령역을 근사하게 소화해 낸 그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새롭다. 크리스 쿠퍼. 이 영화는 사실 그를
위한 영화라고 소개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내용이나 완성도를 떠나 그가 연기하는
에이전트 한센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도 없는 필름이 될 뻔했던 것이다.
건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존재를 알 필요도 없는
에이전시라 불리는 집단들이 있다. FBI나 CIA , 국가정보원 따위 말이다. 인간의
온갖 추한 모습들을 캐내고 그것을 정보라고 부르며 만족해 하는 집단. 그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은 결국 허울 좋은 이상일
뿐 정작 그곳엔 온갖 협잡과 추찹한 추문만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 FBI
훈련생이 결국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새 갈길을 찾는 라스트 씬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로버트 한센. 수십년간 미국 인텔리전스
에이전시에서 고급 정보들을 상대 국가에게 제공한 협의로 구속된 시대가 잉태한 최고의
스파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사실 그가 누군지, 누구였는지가 궁금하지 않을것이다. 다만
그가 왜 그러한 짓을 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도대체 왜 그는 매국으로
대표되는 가장 반국가적인 행동을 오랜동안 지속해 올 수 밖에 없었는가.
크리스 쿠퍼가 연기하는 핸슨의 캐릭터는 그런 의미로 살아 있다.
닉슨이나 케네디 같은 가공할 파워를 지녔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직장과 가정의 구성원들을
속이며 삶을 유지해 나갔던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도대체 왜일까. 미국이 그토록 외쳐대는 패트리어트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직업의 첨병이었던 그가 어째서 반 국가주의자가 되었던 것일까. 돈 때문일까? 무능한
집단에 대한 사보타주 같은 것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가 구속되어 수감된 지금까지도
알 길이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반국가적인 스캔들의 재구성을 통해 에이전트로 한 평생을 살았던 시스템적 인간이 어째서 그 시스템에 치명적인 버그 (또는 영화 제목 그대로 브리치!) 가 되었는지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라는 데 있다. 그것보다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면 이럴지도 모를 것이다. 라는 롤을 잘 묘사한 크리스 쿠퍼가 최고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가 연기의 절정을 맞이한 지금, 그것을 잘 캐치하고 그것을 온전하게 이끈 (그의 연기가 만개할 수 있는 역할을 제공한) 헐리우드가 솔직히 부러울 따름이다.
별 볼일
없는 영화를 돋 보이게 하는 살아 있는 중년 캐릭터를 보여 준
크리스 쿠퍼. 한국 영화계에도 그같은 역할을 소화해 낼 연기자와 시나리오가 넘쳐나는
순간이 올 날을 기대해 본다.
나는 이 순간부터
크리스 쿠퍼의 팬! I'm a huge fan of yours, Mr. Coo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