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성격인지 괴팍한 성격인지 첫 눈에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이 마뜩찮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곤한다. 오늘 내가 버스를 타고 뒷 공간을 한 바퀴
흝어보니
빈 좌석이 딱 한 개 남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3정거장만 가면 다시 내려야 하지만, 대한민국 버스에서
한
정거장 이상 손잡이에 의지해 서 있는 것은 아크로바틱 무술연기의 달인인
성룡도
버거울정도의 고난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앉았다. 아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옆 좌석엔 다행히 묘령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창가에. 그는
내가
앉고 나서 내리기전까지 절대로 나를 한 번이라도 흘깃 처다볼 의도가
없어
보였다. 이른 바 개무시 모드에 돌입한 상태였다. 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군가 (이성에게) 의 주목을 끌정도로 어트랙티브한 남성상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 옆에 앉으면 잠깐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큰
에너지의 소모를 요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어쩐지 속이 상했다. 내릴 때가
다
되자 슬슬 부아가 치밀기까지 했다. 나는 머리가 뜨거워지면 식혀야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는 타입의 인간이다. 말을 꺼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어디까지 가세요?
- 네?
놀라긴,
제길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지.
- 어디까지 가시냐고요.
- 어디까지
갑니다만.
- 아, 어디까지 가시는군요.
- 네.
눈이 동그라해졌다. 안경을 쓴 것만 빼면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72점정도 부여해도
주위사람들에게 점수가 후하다는 잔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나는 곧 내려야 했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내릴 곳은 탄 정류장을 시점으로 3정거장 거리로는 2킬로정도, 신호등만 협조해 준다면 5분도 지나친 거리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는 신호등에 걸렸다. 나는 대화를 마무리 해야 했다.
- 출근중이신가요?
- 아, 네.
- 혹시 저를 모르시겠어요?
상투적인 수법이다. 알턱이 있을리가 없다. 100 퍼센트 초면이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네?
- 왜 저를 쳐다보지 않았습니까?
- 네?
- 제가
버스에 타서 이 좌석으로 걸어와 당신 옆에 착석 할 때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시더군요.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 네?
-
만약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제게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곧 내려야 합니다. 어찌되었건 내리기전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면 꼭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