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말걸기

일쌍 2007/11/08 13:32 Posted by 버트
소심한 성격인지 괴팍한 성격인지 첫 눈에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이 마뜩찮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곤한다. 오늘 내가 버스를 타고 뒷 공간을 한 바퀴 흝어보니 빈 좌석이 딱 한 개 남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3정거장만 가면 다시 내려야 하지만, 대한민국 버스에서 정거장 이상 손잡이에 의지해 서 있는 것은 아크로바틱 무술연기의 달인인 성룡도 버거울정도의 고난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앉았다. 아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옆 좌석엔 다행히 묘령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창가에. 그는 내가 앉고 나서 내리기전까지 절대로 나를 한 번이라도 흘깃 처다볼 의도가 없어 보였다. 이른 바 개무시 모드에 돌입한 상태였다. 뭐 나로 말할 같으면 누군가 (이성에게) 의 주목을 끌정도로 어트랙티브한 남성상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 옆에 앉으면 잠깐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어쩐지 속이 상했다. 내릴 때가 되자 슬슬 부아가 치밀기까지 했다. 나는 머리가 뜨거워지면 식혀야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는 타입의 인간이다. 말을 꺼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어디까지 가세요?
- 네?


놀라긴, 제길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지.

- 어디까지 가시냐고요.
- 어디까지 갑니다만.
- 아, 어디까지 가시는군요.
- 네.


눈이 동그라해졌다. 안경을 쓴 것만 빼면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72점정도 부여해도 주위사람들에게 점수가 후하다는 잔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나는 곧 내려야 했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내릴 곳은 탄 정류장을 시점으로 3정거장 거리로는 2킬로정도, 신호등만 협조해 준다면 5분도 지나친 거리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는 신호등에 걸렸다. 나는 대화를 마무리 해야 했다.

- 출근중이신가요?
- 아, 네.
- 혹시 저를 모르시겠어요?


상투적인 수법이다. 알턱이 있을리가 없다. 100 퍼센트 초면이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네?
- 왜 저를 쳐다보지 않았습니까?
- 네?
- 제가 버스에 타서 이 좌석으로 걸어와 당신 옆에 착석 할 때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시더군요.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 네?
- 만약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제게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곧 내려야 합니다. 어찌되었건 내리기전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면 꼭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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