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
- 응, 물론 많겠지만 하나만
이야기 해줄래.
하나만이라. 사랑하는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을터다.
나는 이 점이 좋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사랑을
하다보면
애초에 가질 수 있었던 그러한 감정이 소멸된다. 첫감정은 용해되어 전혀
엉뚱한
감정을 지닌다. 요컨대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랑하지만 그 이유의 근간을 찾을 수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것을 상대도 모를리 없다. 다만 가끔은 그것을 확인하고픈 사람들이
세상엔
엄연히 존재한다.
- 어때?
- 물론 많아. 너무 많아.
- 정말?
- 그럼. 몹시 많아 헤아리기 어려워. 전부 다 헤아리려면
일년은 족히 걸릴꺼야.
그녀의 눈이 커졌다, 급격히 가늘어진다.
제법이야.
하고 그녀가 말했다. 솜씨가 있어.
- 요리 솜씨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말이야.
- 십년전 별명이 작업남이었어.
- 설마.
- 정말이래두.
- 그럼 뭐야 다 지어낸 이야기야?
- 아냐. 이번만큼은 진심이야.
-
정말?
- 정말.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은 운치가
덜하다.
역시 흙바닥에 떨어진 낙엽이라야 늦가을 다운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아스팔트
위에
낙엽은 아파트 경비원의 근심거리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 좋아.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하나만 대 봐.
- 하나만?
- 그래.
하나만 말해 줘.
- 하나만이라.
나는 생각해 본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점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왜 이런 것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지 못했을까. 잠시 낙담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염두해 두고 사람을 사귈 수는 없다. 때로는 즉흥적으로 애정을 과시해야 할 위기는 연애기간 중에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이다. 상대가 그것을 확인하고 싶을 때는 즉흥적인 응용능력은 더욱 그 빛을 발하게 된다.
-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 당신의 다른 동성과 당신이 구별되기 때문이지.
- 그래?
-
응.
가늘게 떴던 눈이 어느 새 팽창되어 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창 밖을 바라본다. 낙엽은 바람이 부는 강도에
따라
아스팔트 위에 뿌려지길 반복한다. 그녀는 내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 중
과연
어떤 것들을 줍고 싶은 것일까. 짐작하기 어렵다. 하물며 나는 내가
하는
다음 말이 무엇인지 조차 정확히 인식하지 않고 지껄이는 중이지 않은가.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래?
나는 다시
그녀를
바라 보았다.
- 당신은 다른 동성과 조금은 달라. 내가
이 말은 진즉 이야기 했지?
- 그래.
- 달라. 몹시 달라.
- 좋은 쪽으로? 아님 나쁜 쪽으로.
- 물론 좋은 쪽이야.
-
어떤?
나는 말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그녀는
내
입 가로 귀를 기울인다. 다탁 앞으로 바짝 다가 앉는다. 나와의
간격을
좁힌다. 어렴풋이 익숙한 그녀의 프로랄향 샴푸냄새가 코끝에 걸린다. 늦 가을의
하늘은
더 없이 맑다. 지루한 장마 틈 새에 살짝 갠 오후처럼.
맑고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