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포집이 좋은 것은 돈을 준만큼 가슴에 든 회환을 풀어 낼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2. 재개발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추억이라는 녀석은 개발논리에 가장 역학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 재추억이라는 것이 없듯이 사람의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억은 재편될 수 없는가보다. 추억은 낡을수록 새로우며 동시에 오래될수록 감동이 증폭된다. 어린시절 최작가가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훗날 늙으막에 느끼는 그것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것은 그가 어머니 연배에 접어 들어서라기보다, 죽을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가 되면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으로 연명하게 된다.
3. 나는 어머니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에 어머니가 주는 무게감에는 고개를 끄덕일수 있어도 그 자체가 주는 어떠한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독수공방이 유세는 아니다. 허나 그렇게 살고 싶은 것도 또한 어머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버림받음으로써 비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수도 있다고 본다. 개성댁(한혜숙)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장점으로 어머니라는 캐릭터에 집착한다. 자식들에게 그러한 개성댁의 행동은 대개의 경우 끔찍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반대의 형태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재가를 종용하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자신이 미성년이었을 때는 어머니가 자신만의 보호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자신이 더 이상 보호받을 필요가 없게 되는 시기가 오면 보호자는 어느 새 무거운 짐으로 둔갑해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하게 된다.

부엌에서 이렇듯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
5. 예로부터 집안의 천사들은 자아를 발현하는 것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21세기가 지나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결혼으로 결정짓고 불가사의한 세상에 대한 도전은 아들과 남편에게 전가하기 바쁘다. 여자들이 집에 머물면 살림이고 남자들이 집에 머물면 칩거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치가 있는 것은 그 경쾌한 흐름에 있다. 영화는 남루하고 최루의 소지가 다분한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몹시 직선적이며 활기에 넘친다. 지루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즐겁다. 과거에 대한 회상을 자유롭게 유도함에 있어 수준급인데다가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마지막에 개궁상을 떨어 영화가 급하게 종극을 치닫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여지껏 진행되온 리듬이 손상될 정도는 아니다.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개성댁이라고 불러대는 작은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남편 복없이 수절하며 세상을 살아온 개성댁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닐수도 있지만 바라건데 조금이라도 그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7. 알다시피 사람이 나이가 차면 봄이 좋아진다. 혹독한 겨울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일까. 매년 똑같은 장소 똑같은 것들이 새싹을 틔우는 것에도 해걸음 없이 감동하고 또 행복해한다. 봄이 주는 기쁨은 자신이 봄인 시절에 대한 보상일수도 있다. 추억은 자신의 봄과 같은 시절을 잊지 않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추억할 수 있는 자가 행복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테다.

老감독의 힘을 보여준 하명중
9. 한혜숙의 어머니 연기를 하니 너무 고와서 기분이 묘해진다. 지금도 그 명성이 자자한 고두심표 어머니나 요즘 전성기를 맞이한 김해숙표 어머니에 비해 어쩐지 좀 달짜근하다. 뭐랄까 생활의 찌듬이 그들보다 덜하다고나 할까. 영화가 궁상맞지 않고 경쾌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그를 캐스팅했을수도 있다. 내 스테레오식 해석으로는 고두심표 어머니가 강단이나 억척이라면, 김해숙표 어머니는 고난과 용서다. 그렇다면 한혜숙표 어머니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여자'가 아닐까 싶다. 고두심이나 김해숙은 여자보다 어머니에 가까운 캐릭터다. 하지만 한혜숙은 어머니보다 여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때문에 그가 번뇌하는 후반의 궁상씬을 보면 오이디푸스컴플렉스를 극복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한 명의 '여자'로 내게는 그려졌다.
0. 어쨌거나 간만에 썰을 풀 꺼리를 만들어 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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