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며칠전 기분이 몹시 따운된 꽈배기 틸사마를 동대문으로 모셨다. 나때문이라는 핑계가 유효적절한 나머지 혼자 한 없는 우울에 빠져드는 꼬락서니를 두고볼 없었던 착한 버트로서는 어쩔수 없는 초이스였다고나 할까. 암튼 그렇게 앞서거니 두서거니 퇴근과 장소의 시간차를 고려해 동대문에서 조우했다. 일차론 나름 단골이라고 우길수있는 네팔음식집에서 새우카레와 지라라이스 등등을 대접해 기분을 끌어올린 연후에 이차로 건너편 동북화과왕이라는 중국동포술집으로 이동했다.

가던 길 노점에서의 대화 몇 자.

- 와, 이것봐라.
- 뭐.
- 대보름이 지난것 같은데 웬 피땅콩들이 이리 많아.
- 특별히 팔고 싶었던 모양이지.
- 그런가?
- 아마도.

뭐 이런종류의 대화였던것 같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뉴스를 들으니 맙소사 내일이 대보름이라는 것 아닌가. 지나긴 개뿔,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대보름 아니던가. 한심한 두 인간의 무심한 대화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대보름 이야기 좀 해보자. 내일이 대보름이란다. 대보름. 이름 한 번 멋지지 않은가. 큰보름으로 하면 순 우리말인데 좀 아쉽다. 그냥 나 혼자 미친척하고 큰보름이라고 불러볼까 앞으로? 어쨌거나 큰보름이란 말은 한가위보다 멋지다. 여기서 '한'도 크다는 의미일테니 이래저래 명절의 명칭은 스케일이 커야 백성들이 안심하나다 보다.

- 대보름보다 큰보름이 더 멋져.
- 큰보름?
- 응.
- 그나저나 잘도 지어낸다.
- 사람에게는 큰보름.
- 그럼 강아지는?
- 그거야 개보름이지. 개보름.
- 하핫.

개보름이든 큰보름이든 암튼 보름은 보름이다. 달만 휘영청 떠 주면 몹시 근사한 우리네 명절이다. 명절하면 또 음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참새들. 부럼을 준비하는 손길 사이사이로 노변에 쭈그리고 앉아 큰보름 나물들을 파는 할머니들의 갈라터진 손들도 분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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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 사진 출처 : 야후

큰보름음식으로는 역시 오곡밥과 나물이다. 찰진 밥 한공기에 기름지게 볶은 나물이 벌써부터 내 오장육부에 퍼져있던 군침들을 끌어모은다. 특히 나물류! 도라지나물, 취나물, 호박나물, 무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등등. 와아, 오장육부를 파고드는 아밀라아제의 협공에 두통이 일어날 지경이다. 특히나 나는 이러한 나물중에 단연 압권을 자아내게 하는 주인공은 단연 시래기 나물이다. 겨울내 처마밑에서 얼며 녹으며 자연건조되던 무청이 말라비틀어졌다면 이미 시래기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녀석을 짭쪼름하니 된장을 넣고 무치던가 그저 달군팬에 살짝 지져 국간장으로 간을 하던가 뭐든 좋다. 참기름 두서너방울 첨가해 감칠맛을 더한 녀석을 오곡밥을 뜬 개인 삽 위에 가지런히 올려 입안에 넣어주시면 산해진미가 별로 부럽지 않다. (아, 침 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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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나물 출처 : 엠파스지식

암만 서울토백이라고 해도 초딩때 지금의 롯데월드 터에서 쥐불놀이도 했었다는 게 믿어지는가. 이제 건물이 빽빽한데다가 요즘은 공공장소에서 라이터만 켜도 문화재위원회 소속 감시원들에게 주의를 받는 살벌한 상황이 전개되는 터라, 아쉽지만 불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게 유감이다. 아쉽다면 옥슨 80의 쌍팔년도 히트곡이라도 감상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달래는 방법이 있긴 하다만 어떨지. 너무 소극적인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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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데 이제 중년이 된 왕년의 종합예술인이 눈에 걸린다. :)


또한 큰보름하면 떠오르는 영화도 있다. 버트가 뽑은 한국영화 베스트 빠이브 안에 당당히 랭크된 (아직 리스트는 포스팅 안되었지만 조만간에 베스트 카테고리에 리스트 업 할 예정이라는) 영원한 장군의 가짜 아들, 배우 박상민 최고 역작인 '나에게 오라'가 있다. 송기원(宋基元)의 자전적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를 원작으로 한 90년대 한국액쑌영화의 지존 김영빈 감독의 최고작이기도 하다. 박상민이 연기한 주인공인 낙지대그빡이 바로 정원대보름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다. 또한 우리의 큰형님 최민수옹께서 어색한 사투리로 남도를 주름잡는 양아치 역할만 하지 않았어도 당대 최고의 작품이 될 뻔한 안타까운 사연이 숨쉬고 있는 나에게 오라! 나는 아직 나에게 오라를 보지 못한 피플들은 방화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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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다, 그리고 슬프다. 무척.


한심한 커플의 무심한 대화는 간혹 이처럼 엄청난 량의 수다를 생산할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보고 줏어들은 것은 많은데 시간은 박스안에 담겨진 연약한 병아리의 수명만큼 한정적이라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아무러하든 내일은 큰보름이다. 쥐불놀이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지났지만, 적어도 가까운 지인 몇몇과 귀밝이술정도는 수 있지 않던가. 구태여 더운 청주가 아니어도 좋다. 더운 소주라도 어떠한가. 선조들이 설파하길 그저 지인들과 덕담을 나누며 귀밝이술을 나누면 1년내내 좋은 소식이 날라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맘에 안드는 인간이 끊임없이 세상에서 죽지않고 온갖 구정물을 튀기는 요즘 그들에게 막연한 저주를 쏟아내 자신의 입을 더럽히는 것보다 점잖게 내 더위나 가져가라고 강매하는 순에서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기도 하다.

다들 맛있는 음식들 잘 차려 잡숫고 기운차게 2008년을 열어나가시길 빌어보면서 두서라곤 콩나물 대가리만큼도 없는 포스트를 접는다.

행복한 큰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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