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개방하니 냉기와 함께 언제 샀는지 모를 이란썽 쌍둥이 파프리카 두 개가 자신들의 싱싱한 피부가 자칫 주인장의 무심한에 쭈글쭈글 해질까봐 노심초사 하고 있질 않은가. 내 그들의 충정을 어여삐 여겨 역시 잠자고 있던 돼지고기와 두부를 백 보컬로 준비해 훌륭한 스낵을 급조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파프리카 속 으깬두부채우기>. 이름이 너무 서술적이라는 김치따위의 원성을 무시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참고로 바다건너 양코배기들은 요런 종류를 통칭해 가볍게 다음과 같이 불러준다. Stuffed Pepper. 간단하다만 묘사가 부족하다. 뭘로 채웠냐에 따라 스터프드 페파는 그 맛과 풍미가 달라지니까 말이다.
두터웠던 등심살을 깍둑설기하는 중이다. 잘게 찹을 쳐서 써도 무방하겠지만 오늘은 괴기의 씹는 맛을 좀 느껴보려고 다이스로 썰어줄꺼다.
양념은 파이코肉 베이스를 썼다. 파이코니쿠가 무엇인지 묻지마라. 기업 히미쯔다. 레써피는적당한 량의 청주, 양조간장, 다진마늘, 후추, 설탕 따위로 구성된다.
깜찍한 파프리카 적황형제. 영화 기담을 정가형제, 매트릭스를 워쇼스키형제, 덤앤더머를 페럴리형제가 만들었다면 이 요리는 파프리카적황형제표 작품일테다.
뚜껑을 만들고 속을 파내라.
여기서 다시한번 이 정체불명의 음식 제목을 기억해보자. 파프리카 속 으깬두부채우기. 다. 기억했는가 그렇다면 두부를 으깨서 속을 채워라!
아, 센스있는 사람들은 반나절 전 양념해 두었던 돼지고기를 잊지 않고 두부랑 같이 스터프드stuffed 해줬을 것이다. 그리고 찐다. 궈도 좋다. 오븐이든 찜통이든 먹고픈 사람의 취향이나 요리를 기다리는 관객의 뻐꾸기의 향방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짠~ 몹시 뜨거운 싸우나에서 방금 빠져 나온 노란파프리카. 고기가 익을정도로 땀을 빼주면 성공.
빨갱이도 기념사진 한 방.
이번엔 기념 투 샷.
이 요리의 장점은 안에 무엇을 채우든지 채움을 당하는 녀석의 자태는 늘 그대로란 점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사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속 알맹이로 어떤 지식과 어떤 경험을 채우든 겉은 늘 단정하고 품위가 있으며 매너가 만땅인 사람말이다.
두 개 정도 요리해 두면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사실 이 음식은 미드 '하우스' 2시즌을 보고 삘 받아 만들어 먹은 것이다. 극중 윌슨씨가 하우스씨네 집에 얹혀 살면서 온갖 요리를 척척 해 잘도 먹기에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