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책이 대안이다! 책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조제는 가난뱅이다. 투 스트라이크.
조제는 장애인이다. 쓰리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태어나는 것은 개인의 의지를 반하는 자연현상이다. 생명의 고귀함을 떠나서 누구든 자아가 깨어날 때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것이 사회보편적 평등에 크게 밑돌면 좌절하게 된다. 조제는 가난한 장애 여성이다. 고단한 인생이 눈 앞에 무한하게 펼쳐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해 새 공책을 받아 무엇을 적을지 고민하는 중산층 남자아이가 결코 느낄 수도 스스로 알아챌수도 없는 환경에서 그녀는 태어난 셈이다. 그녀가 받은 공책은 없었으며 남이 쓰다남은 너덜너덜한 공책 공백을 활용해야 하는 삶을 부여 받았다. 이 정도면 과연 우리가 살아갈 필요를 어디서 느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말랑한 대학생인 츠네오가 인생 자체가 삼진 아웃인 조제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츠네오는 조제를 만남으로 해서 인생이 새롭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신의 미래가 적어도 자신의 손에서 얼마든지 뒤바뀔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음을 알게 된다. 이른 바 행운아인 셈이다.
이 영화는 조제와 비슷한 인간이 보는 시점과 츠네오와 비슷한 인간이 보는 시점이 확연하게 다른영화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머쉬멜로우처럼 달콤한 인생사에서 거의 부침없이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조제의 존재는 영화 속 인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조제와 환경이 비슷한 중증 장애인인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머쉬멜로우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 알고싶지 않아도 알아야한다. 그 점이 다르다. 여지가 없다. 선택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조건을 갖춘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뼈속깊이 받아 들인다.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질 때 울 수 없었다. 삼진 아웃 당한 여자아이에게 사랑의 상처는 사치라는 뜻이 아니다. 무수한 세월 강변을 뒹굴던 바위가 자잘한 자갈로 바뀐 것 뿐이다. 둥근 자갈은 생채기 잘 나지 않는다. 모난 사람만이 상처를 느끼고 그 상처에 절망한다. 조제가 츠네오를 사랑하지 않아서 울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며 부딪혀 나가야 할 무수한 장애 (이 상황에선 '장애'란 일반적인 뜻을 가진 obstacle이라기 보다 hazard에 가깝다.)의 중간즈음이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상기시키는 사건들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스처지나간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그것에 메달리지 않겠다. 그것이 츠네오의 오열보다 어쩌면 더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헤어짐을 강제하고 그것에 복받쳐 눈물을 흘림으로서 자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영혼을 스스로 정화한다. 인간은 얼마나 교활한가. 그렇다 해도 츠네오를 비난할 자 이 세상에 그 누구이던가. 그는 정도를 따랐을 뿐이다. 그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함으로서 구원을 얻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사랑은 당사자의 일이며 그것이 잘 되지 않는 다고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현상이기에.
오늘 출근길에 조제를 떠올렸다. 내가 이 영화를 몇 번을 보았나 세어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웹에 출력 한 적이 있나 떠 올려 보았다. 왜 하필 오늘인지는 모른다. 영화는 보고 나면 금방 잊혀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된 감상을 피력하기가 어려워 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바로 이영화가 그렇다. 세월이 흘러 어느 시점에 문득 그 때 그 영화가 잔잔하게 스쳐지나간다.
집에 가서 타네베 세이코 여사의 원작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주국제영화제 서포터스 가입 (2) | 2008/03/24 |
|---|---|
|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예매 완료 (0) | 2008/03/24 |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4) | 2008/03/21 |
|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 | 2008/03/18 |
| 새드 배케이션 : 아오야마 신지의 삼부작 완결편 (1) | 2008/03/17 |
| 아, 빌어먹을 영화 :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 2008/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