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세트 - 전2권 - 10점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들녘(코기토)

허벌나게 박식한 피플들을 보면 새삼 내가 얼마나 작은 인간인지 때마다 좌절을 경험한다. 분명 격식과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내가 그들과 다를게 뭐일까 자문하다 밤을 세우곤 한다. 그리고 어느 뒤돌아보면 내가 그들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고 실의에 빠진다. 나는 결국 그들과 나란히 설수 없음을 질시와 비난으로 무시하지 못하고 그들이 서 있는 자리를 동경한다.

일흔이 넘거나 또는 육박하는 작가에게는 완전한 사유가 보장되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올 해 들어 읽은 책속에서 이렇듯 진주를 발견하게 된 까닭은 내가 아마도 복이 많은 짐승이기 때문이리라. 파스칼 메르시에. 아마도 작가는 이 책을 독일어로 썼을 것이다. 나는 독일어를 하지 못하기에 원서를 사서 읽을 수는 없다. 그 점이 아쉽다. 작가가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누군가의 번역으로 대리만족해야 하는 것이 못내 마뜩잖다. 그만큼 이 책은 위대하다.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멋진 인용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인용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며 좋은 구절이 나오더라도 그것에 밑줄을 치거나 따로 적어 놓거나 하는 짓거리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인용하고 나면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5%밖에 부활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꺼려진다. 그렇다고해서 인상적인 구절이 인쇄된 페이지를 접지도 못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나는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은 베른의 변두리구석 고어고문(학) 선생이 어느 날 포르투기스를 쓰는 여성의 아우라에 반해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를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구속받지 않은 천재이자 의사인 프라두를 만나게 된다. 그가 남긴 별볼일 없는 사사로운 문서따위를 통해 사유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한다. 그리고 그가 걸어 온 길이 닮아있는 오늘날의 한국 민주세대에 회환을 선물한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따르는 무리들의 번거로운 격식을 무시했던 복사, 한 생명에게 진정한 삶을 설명해주기에 미흡한 자신을 나무라며 자식을 생산하지 않았던 숫컷,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격정적으로 누군가를 자신의 품에 가두어 놓으려고 했던 남자, 억업된 폭거속에서 그 억압을 행한 독재자를 건강하게 만든 의사. 숱한 수식을 남겨놓고 동맥류 앞에 결국 굴복해 세상을 등진 프라두의 기이한 생애. 우리는 근대 포르투갈의 우울한 시대에 태어나 넘치는 자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무덤속으로 사라져버린 한 비범한 인간의 족적을 더듬으며 그가 느끼고자했던 세상의 모순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생각해 본다. 그레고리우스는 메신져일 따름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작은 학자이자 재미없는 남자. 그가 육순을 바라보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사실 너무 늦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그레고리우스 전철을 따르되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삭인다.

작가가 속삭이는 말을 들을 있다면 당신은 지금 떠나야 한다. 프라두나 그레고리우스처럼 자식도 없고 아내와 이혼한 상태라면 더더욱 떠나야 한다.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지금도 존재한다.

최근에 본 소설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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