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again?

포토 2008/04/25 12:45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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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집은 이른 바 복도라는 것도 있다. 복도. 학교다닐때 집에서 꿰매온 왁스 걸래로 손이 못이 박히도록 걸레질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삐걱 거리는 마루바닥에 왁스를 칠하기 전 우리는 걸상을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바닥자리를 중심으로 왁스를 먹였다. 형편이 좋거나 부모의 케어가 극상에 달한 아이들의 걸레는 바느질이 꼼꼼한데다가 걸레를 이루는 페브릭이 한 눈에 봐도 고급이었다. 아마도 부잣집 사모님의 경우 단골 세탁소에 부탁해 걸레를 만들어 아이편에 보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같이 장사를 하거나 해서 바쁜 아이들에겐 동네 문방구가 좋은 친구였다. 그곳엔 없는 게 없었다. 그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자잘한 아이들의 코묻은 돈을 털어 생활을 꾸리는 사람들이었다. 보조주머니에 꼬불쳐 둔 50원까지 빨아내기위해 크기가 몹시 컸던 (아이 때는 주변 모든 게 커보인다) 검정팬에 떡볶기까지 만들어 놓고 개당 십원씩 받았던 것이다. 물론 왁스걸레도 팔았다.

나는 책상아래에선 갖가지 수다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떠들기로 유명했던 나는 그들의 말소리를 집중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문제가 된 것은 늘 왁스걸레였다. 것은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 조악했다. 나는 집에서 걸레따위를 곱게 바느질해 사람이 전무했다. 할머니께서 걸레살 돈을 주시긴 했지만 나는 그 돈으로 너구리따위를 했던 것이다. 내 수중엔 걸레살 돈만 늘 부족했다. 담임 선생의 추궁을 두려워 한 나는 실과시간에 배운 바느질솜씨를 발휘하기로 했다. 여러가지 바느질을 배웠지 않은가. 할머니의 바늘쌈지를 꺼내와 너무 오래 입어 색이 바라고 군데 군데 구멍이 뚤린 삼촌의 난닝구를 타겟으로 삼았다. 정교하게 바느질을 하진 못했지만 당시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같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생활에서 실천한다는 실과라는 과목의 첨병 노릇을 하기에 충분한 앞서가는 아이였다. 바느질은 형편없었지만 걸레질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무슨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있어서 역사상 실전용 첫 바느질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다. 10살짜리 꼬마에 손가락에 맞지도 않는 골무를 끼고 걸레를 만들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당시엔 꽤 진지했을 터지만 말이다.

* * *

비록 가짜마루 바닥이지만 나는 옛날처럼 무릎을 굽히고 걸레질을 하지 않는다. 마포자루에 극세사 천을 붙여서 바닥을 닦는 걸레를 사용해서 방과 마루 그리고 부엌을 닦는다. 내가 왜 그 옛날 왁스걸레질을 때를 생각해 냈을까. 알 수 없다. 머리속에선 하루에도 천 번도 넘게 추억이 오고가고 그 중 운이 좋은 몇몇은 타인도 공유할 수 있게 이런 곳에 버젓이 모습을 들어내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를 옛이야기라고 하기도 하고, 빛 바랜 추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추억의 편린을 마루 무늬의 장판을 보면서 끄집어냈다.

요즘 아이들이 왁스걸레질을 했을까? 아니 왁스걸레가 무엇인지 알까? 그녀가 말하길 요즘 아이들은 연탄을 알지 못하며 또한 그것을 집는 연탄집게 또한 생소하다고 했다. 연탄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연탄집게를 설명하는 그녀의 노력을 생각해 본다.

- 이것이 뭐지?
- 몰라요.
- 몰라?
- 네.
- 첨 봐?
- 네.
- 이것은 연.탄.집.게. 야.
- 연탄집게?
- 그래 연탄집게.
- 그게 뭐에요?
- 연탄을 집는 도구야. 연탄이 뜨겁거나 또는 차갑게 식은 것이라도 손으로 만지면 석탄가루가 묻거든. 그래서 연탄을 들 집게가 필요한 거야.
- 연탄이 뭐에요?
- 연탄은 추운겨울을 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용한 물건이란다. 어떻게 생겼냐면.


그녀는 연습장 공백에 연탄을 그렸다.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텍스트 북에는 연탄집게의 그림은 인쇄되어 있었는데 연탄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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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연탄이에요?
- 응. 이게 연탄이야.
- 구멍이 아홉개라 구공탄이라고도 불렀어.
- 구공탄?
- 응.
- 구공탄이 뭐에요?
- 연탄의 다른 이름.
- 연탄은 뭐에요?
- 선생님이 방금 말했잖아. 연탄집게로 연탄을 집어 난로나 아궁이에 넣어 난방을 하는 거야. 추운 겨울에 안춥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 아궁이?
- 응.
- 아궁이가 뭐에요?


끝이 없는 것이다. 마치 겨울 쿠릴열도에 내리는 눈 같다. 부지런한 집주인이 자신의 앞마당을 아무리 쓸어도 눈은 계속해서 쌓이고 또 쌓인다. 아이들의 질문은 끝없이 교실로 내리는데 상대적으로 이해는 눈곱만큼도 쌓이지 않는다. 그게 아마도 내 여자친구의 직업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 * *

여자친구는 나와 데이트를 할 기분이 좋을 경우 팔짱을 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예의 간판읽기를 시작한다.

- 와, 저것봐 까꼬뽀꼬야. 웃기지. 미용실 이름이 까꼬뽀꼬래. 히히히.
- 그러네.
- 에, 저것도 봐. 호프집 특별안주 이름이 플랭카드에 걸렸어. 이름이 니맘대로래. 아무거나는 봤어도 니맘대로는 첨이야.
- 실제로 안주시키기 고민하는 인간들이 참 많은가봐.
- 앗, 저것봐 저거 새로생겼나봐.


재잘재잘. 나는 그러한 간판읽기를 들어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처준다. 때로는 내가 먼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해서 흉내를 내며 읽어보곤 하는데 그녀는 거기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가 발견해서 내게 말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단념하고 꿀장구를 쳐주며 목적지로 흘러간다. 간판읽기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오랜 세월 글 읽기의 기초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건전한 놀이문화인지도 모른다.

매일 밤 우리는 통화를 한다. 자기전에 굿나잇 메시지는 연인들의 오랜 전통과도 같다. 누가랄것도 없이 내키는 사람이 전화를 걸고 하루를 정리하는 멘트를 하고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간다.

- 아까 당신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읽은 책중에 이런 대목이 나왔어.
- 어떤?
- 그녀가 없어서 외로웠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어느정도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다. 외로움은 그런 것이다. 이름모를 새가 떠나간 괴괴해져버린 숲의 거대한 모밀잣밤나무 같은 것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어.
- 그렇구나.
- 내게 있어서 외로움은 텅빈 숲에 내동뎅이처진 거대한 모밀잣밤나무 같은 것일까?
- 글쎄.
- 아마도 내게 있어서 외로움은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복도 한 켠에 세워둔 마포자루와도 같은 것일지 몰라.
- 마포자루?
- 응.

가끔 내가 외롭다는 것이 창피할 때도 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결혼하지 그랬어.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의 상대를 만나지 그랬어. 결혼을 원하는 여성을 덥석 움켜쥐지 그랬어. 그러나 인간의 외로움은 아내나 자식의 부재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외로운 것은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도 상대방의 부족함도 아니다. 그저 그것은 숙명인 것이다. 마치 지금 흐르는 길버트 오'설리반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처럼.

I may as well go home, As I did on my own, Alone again, naturally.

길버트 오'설리반의 노래는 궁상맞지 않다. 이런 노래를 우리는 '심금을 울린다.' 라고 말해주는데 인색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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