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가끔은 이런 문장으로 에세이를 시작하고 싶었다. 방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고. 사실적인 글들을 좋아하는 피플들에게는 개 앞발로 붓을 잡아 추사체를 흉내내는 것보다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세상엔 그런 문장으로 에세이를 시작하고 싶은 웃기는 인간도 엄연히 살아 숨쉬는 것이다.
어쨌든 구름 한 점 없었다. 구름을 집안에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구름을 지근거리에서 감상한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일께다. 책을 읽다 지쳐 고개를 들면 천장엔 익숙한 벽지 또는 전등을 대신 해 구름이 몇 점 떠 있는 거다. 뭉게뭉게. 그렇다고 통상 바깥 하늘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이즈는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집안 전체가 구름에 휩싸여 있을테니 그것은 좀 음산하지 않을까싶다. 미니어쳐는 구름에도 적용해야 한다. 특수 촬영으로 구름을 심어 놓는 것따위로는 어림없다. 우리 집엔 블루 스크린이 없으니 무조건 안된다.
암튼 천장에 구름이 떠 있는 것이다. 실제 사이즈보다 몹시 축약되어 있다는 점이 앙증맞다. 하지만 눈가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구름을 한 점 한 점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즐거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 하지만. 곤란 할 때도 있지 않을까?
- 곤란하다? 어떤?
- 이를테면 말이지. 비가 온다거나 우박이나 천둥 번개 같은 거 말이야.
- 아아, 듣고 보니 그러네.
- 장마철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당신이 떠내려갈지 몰라.
- 하하하. 그러면 정말 곤란한데.
그것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구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나머지 구름이 머금고 있는 온갖 종류의 숙명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나는 참 어처구니 없는 인간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조금씩 생산해 가끔씩 타인에게 뿌려대는 잘난 체를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거침없이 뿜어댄다. 듣는 사람들은 피곤함을 넘어 일종의 외경심마저 느낀다고 호소한다. 그리고 가끔 자기 자신이 시니컬해질때면 이렇게 옹골차게 되받아치곤 한다.
- 넌 왜 그렇게 뻔뻔한거냐, 대체.
뻔뻔함으로 중무장하고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막상 너는 왜 그렇게 뻔뻔하냐고 물어오면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글쎄. 대체 나는 왜 이렇듯 뻔뻔한 것일까.
* * *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하는 감정만큼 그 사람을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그 상냥함을 과시한다.
-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인거냐? 대체 그렇게 이기적인 주제에 또 건방까지 떠는 꼬락서니하고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네게 뭐야, 파트 타임 러버냐? 스티비 원더의 노래 만큼이나 경박하고 품위가 없냐고! 너 때문에 좋아하던 블라인드 가수 한 명 온전히 싫어하게 되었어. 나는 그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다고. 듀크 엘링턴을 찬미하며 부른 Sir. Duke 랄지, 그 유명한 1972년 앨범에 실린 Superstition 과 같은 노래의 열렬한 팬이란 말이야. 그래, 시간을 구애받고 살아가는 게 나뿐만은 아닐꺼야. 하지만 구차하다는 생각은 안들게 해주면 좋잖아. 성격은 뻣뻣하기가 어디서 늙어 빠진 조랑말의 허벅지 고기같아서 씹다가 씹다가 결국 지쳐 잠들정도니, 이거야 원. 로맨스를 하려거든 로맨스적인 상황을 피하면 안돼. 이해는 오해의 전부에 불과하다고 하루키도 주장했잖아. 이해를 강요하는 이른바 이해의 불가피성으로 타인을 설복 시키는 것은 어차피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조건을 사랑하는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그것이 가져오는 모든 부차적인 결과물들을 대비하는 거야. 그렇게 해도 인생이란 놈은 어떻게 흐를지 몰라. 뿔난 망아지 같거든. 자리를 잡고 앉아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 가능한 것들을 추려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게 관건이란 말이지. 그게 이치에 맞고 사리에도 맞아. 결과가 정해져 있고 피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희망을 줄 수는 있는 거야. 사람은 말이야 사랑없이는 살 수 있어. 남편과 수절해 수십평생을 혼자 살고 전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는 할머니를 봐도 알수 있잖아. 사랑없이는 살 수 있어. 나는 그들이 먼저 간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우리가 손잡고 앞을 보며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거야. 이를테면 그러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그들이 끝을 보고 혼자 곧게 살아 온 원동력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해. 그게 희망이야. 삶의 희망 말이야. 그것을 보고 살아왔다고 믿어. 그들이 느끼는 제각각의 희망을 나는 물론 알지 못해.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그 희망이 그들이 삶을 질기게 버텨 온 근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거짓말을 해도 좋은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게 싫다면 희망을 줘야 해.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이른 시일 안에 현실화 되기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해. 그게, 그런 행동들이 신기하게도 상대방에게 믿음을 줘.안심을 가져다 준다고. 그리고 너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기운을 복돋아주는 거야. 단지 의기소침한 인간이라면 그것을 듣고 싶은 것 뿐이야. 사랑한다면 카페라테처럼 부드러울줄도 알아야 해. 매일 네 목 깊숙한 곳으로만 그 부드러움을 착복하려 들지만 말고 타인에게도 네가 느끼는 카페라테 한 모금의 부드러움을 나눠줘야 한다고. 그게 내 생각이야.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아니 가기 싫어. 나는 네가 좋아. 어쩔때는 좋아서 너무 좋아서 생각만으로 막 눈물이 나. 남자 새끼가 어디 혼자 질질짜고 그래 병신같이. 라고 누군가 내 귀에다 데고 비난해도 상관없어. 그럴 때가 있어. 나는 네 생각만으로 아직까지 가슴이 벅차. 바로 그게 내가 최근에 힘이 든 이유야. 그 정도로 좋아하는 데 상대는 나를 그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을 뿐이야. 고통스러우니까. 문제는 혼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혼자라는 것을 네가 알아 주었으면 싶은거야. 그곳에 위안이 있고, 희망이라는 게 있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내 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혼자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나는 지금 두 팔 벌려 너를 안을 수는 없지만 사실 나는 네 품 안에 꼭 안겨 있다. 그것이 중요해. 그게 나를 홀로 두지 않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게 해주는 거야. 그게 희망의 원천이고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을 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
물론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일종의 나를 둘러 싼 침묵에 대한 항변일지도 모른다. 구름은 그런 항변을 들어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구름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기력도 없다.
* * *
구름이 방 안에 떠다니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으며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구름은 사실 목적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좌에서 우로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내 방안에 존재하는 구름도 그러하다. 방 안에 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흘러 들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구름은 또 어딘가로 흘러가 버릴 것이다. 구름이 흘러가고 나면 다시 어딘가로 온 구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늘 그렇다. 늘 새롭다. 오늘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이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러한 마음이 늘 새롭게 용솟음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감정의 기복을 매꾸고 내가 타인을 경멸하거나 혹은 같은 량의 비난을 받는 것을 어느정도 희석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멀리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소멸시켜버리고 싶다. 소멸하는 것들은 소중한 것에서부터 그렇지 않은 것 까지 우리네 인생살이에 무수히 발생한다. 하지만 동일감을 소멸시켜버리고 싶지 않다. 일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있어 즐겁다. 라는 감정을 늘 소중히 여기고 싶다. 만약 그곳에 (내 마음 깊은 곳에) 같이 있는 감정이 존재한다면 날 그것을 영원토록 지켜내고 싶다.
당신도 그랬으면 참 좋겠다.
구름이 흘러가는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 나는 참으로 많은 공상을 하는 것이다.
(출근길을 부러 돌아가는 420번 청색버스를 타고 맨 뒷좌리에서 타이핑...와이브로 켜 놓고)
태그 : 구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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