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청소부 이야기

일쌍 2008/06/04 15:58 Posted by 버트
가끔, 나는 출근시 국도변 휴계소를 들린다. 시원하게 볼일도 보고 내키면 만쥬따위의 가벼운 간식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도 시간이 좀 남으면 인터넷도 한다. XX휴계소라는 제목의 WIFI가 쌩쌩해서 좋다.

오늘도 나는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향했다. 휴계소가 다 그렇듯이 이곳도 입식 소변기가 빙둘러가며 적어도 스무개는 넘어가는 거대한 화장실이었다. 문을 지나 분수를 돌아 (화장실에 분수가 있다! 참고로 우리집 화장실은 그 분수 크기보다 작다) 소변기로 향했다. 먼저 볼 일을 보고 나오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을 축구스타 이영표식으로 살짝 제쳤다. 그러자 바닥에 무엇인가 꿈틀거리며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었다. 다릿병을 앓았던 사람인지 아님 교통사고의 후유증 때문인지 암튼 그 아저씨는 양반다리를 한 자세로 소변기 쪽으로 이동중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피해 비교적 먼쪽으로 이동해 지퍼를 내렸다. 그도 그럴것이 앉은뱅이의 시각으로 보면 내 아랫도리가 적나라하게 보일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리고 볼일을 보았다. 순간 앉은뱅이가 앉아 있는 곳에서 작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 어매, 아자씨를 보고 있자니 얼굴이 미안해서 오줌을 싸기가 힘드네요.


얼굴이 햇볕에 탄 비교적 후반기 중년의 아저씨가 밑을 향해 일갈하고 있었다. 상황을 급히 따져보니 앉은뱅이 아저씨는 소변기 밑에 괸 오줌을 걸레로 닦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보행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한 마디 한 모양이었다. 두 다리 멀쩡한 것도 미안한데 내가 흘린 오줌까지 닦아주는 수고가 송구스러웠을 터다. 물론 나도 그랬으니.

하지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앉은뱅이 청소부는 위를 쳐다보며 가볍게 꾸짖는 것이 아닌가.

- 그런 소릴랑 치우시오. 것보다 오줌들 쌀 때 제대로 조준 좀 하고 싸소. 이거야 원, 돌아가며 닦아도 닦아도 변기 아래 고인 오줌은 줄지가 않아. 대한민국 남자들은 죄다 오줌 누는법 다시 배워야 해. 더러워서 살 수가 없어 당췌.


먼저 말을 꺼낸 아저씨는 뻘줌함을 느꼈는지 얼국색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바로 나가버렸다. 허나 그 청소부의 외침은 그에게 말을 건낸 아저씨에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그 순간 그 휴계소 남자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그 화살이 하나하나 향해져 있었다.





* * *





나는 하루에 몇 번은 공중화장실을 들리게 된다. 사무직이 아니어서 그렇다. 하다못해 동네 스타벅스를 가더라도 화장실을 들리게 되지 않던가. 물론 소변기의 흘린 오줌을 닦는 청소부는 여럿 보았다. 그들은 대게 마포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정기적으로는 아마 물청소를 할 것이다. 하지만 앉은뱅이 청소부는 금시초문이었다. 신체적 특성상 소변기 위를 닦을 순 없을 것을 착안한 휴계소 측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뭐랄까 조준을 잘 못해서 지린 타인의 오줌을 걸레로 닦는 것은 어쩐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면 너희 남자들이 조준을 잘 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음 되잖아.
- 그렇다면 그 앉은 뱅이 청소부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휴계소에서?
- 글쎄.


삶에는 여러가지의 딜레마가 있다. 조준을 잘하고 오줌을 눠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청소부도 있다. 그는 분명 화장실 바닥을 닦으라는 수준의 명령을 준수하기 위해 채용된 사람이리라. 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화장실 바닥을 더럽히는 것은 결국 발사와 마무리를 질서정연하게 하지 못한 칠칠치 못한 남자들일 뿐이다. 그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 없이 지린 오줌을 닦아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결과적으로 소변기 밑도 화장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씻고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대 물었다. 그리고 방금 앉은뱅이의 수고를 격려하다가 되려 한 소리 듣고 뻘줌해진 아저씨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혼자였고 무엇인가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사람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타인이 행복하지 않는 것, 즉 불행한 상황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물대포에 맞아 반실명이 된 시위참가자를 보면서 애가 타 들어갔지만, 동시에 내가 자리에서 그런 봉변을 당하지 않아서 안심하는 존재인 것이다.

반대로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타인이 땅을 샀기 때문이다. 그 땅이 무능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의도적인 실패로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제대로 된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인적자산을 키웠다면 강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라고 믿는다.

앉은뱅이를 동정하면서 나는 동시에 내가 자리에 앉아 타인이 흘린 오줌을 닦지 않아 순간 행복했다. 나라는 인간도 결국은 불행한 타인이 아님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만 알고 다른 하나는 모르고 있다. 그 기준은 결국,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 지린 오줌을 누고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 인간들이 세워 놓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이 흘린 오줌을 닦는 앉은뱅이 아저씨가 자신 스스로는 도대체 어떻게 소변을 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외에도 난 단 하나의 단서조차 얻을 없는 것이다. 그저 그보다 내가 좀 더 나쁘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으로 허영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삶을 마감하고 싶다. 나는 내 스스로의 재량으로 행복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창조적 인간이라고 믿고 싶다. 타인이 어떠한 삶을 지탱해 나가는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 바로 자신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게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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