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친스의 자비를 팔다와 촛불잔치
- Posted at 2008/06/16 12:16
- Filed under 책
- Posted by 버트
요컨대 마더 테레사가 구교로 일컬어지는 로마카톨릭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나는 그녀가 정확히 누군지 모르며 오로지 성녀로만 그녀를 기억한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다른 세상으로 흘러간 위인이니 오죽하랴) 그것이 어쨌거나 그녀를 기억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내가 접하는 모든 찌라시들과 규범에서 나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다.
그녀는 인도의 남루한 도시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선교와 의료활동을 벌였다. 그것이 전 세계인들의 동점심을 유발하여 크고작은 도시에서 그녀를 추종하는 수도회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로마 카톨릭내 거대한 종파가 탄생한 것이다. 이른바 마더 테라사교. 이 책은 그를 밀착 취재할 기회가 있었던 비평가 히친스가 뭔가 이상하다. 라는 고개가 기우뚱하게된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또한 악마의 책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우려에 가깝다) 왜냐하면 절대다수가 믿는 어떤 사건은 보편적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늘 그렇듯이 묵살되게 되어 있다. 사실이 진실과 다른 이유는 허다하다. 보지 못하고 그녀를 추앙하는 사람들의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그들이 따르는 리더의 입술에서 기인한다. 지도자의 위치는 강력해 그것은 늘 선동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좌파를 팔아 자신의 명예를 높인 후 적당한 시점에서 우파로 전향한 히친스 (논란꺼리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은 어쩌면 시대적 흐름에 가깝다. 과거 운동권이던 학생들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전부 보수당으로 회기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의 전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여러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마치 민중 모두의 뜻인양 호들갑을 떨며 사회적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수 많은 변종 파시즘들속에서 어떤 사실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 아닐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 비평의 핵심이기도 하다. 비평은 비평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더욱 칼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마치 몇 달째 광화문의 밤을 밝히는 촛불집회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고, 정치권의 오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가치를 처음부터 묵살하는 것과도 닮았다. 왜냐하면, 비판의 금기는 있을 수 없으며 비판의 대상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된 비판이라도 반대론자의 의견을 들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올바른 비판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다시피 누구나 100% 타당할 수는 없다. 의견개진과 그것에 대한 비판, 수정안, 그리고 소수에 대한 의견수렴등 다각적인 사회적 통찰력이 한데 모아져야 비로서 하나의 개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인 개념을 토대로 정치인들은 자신의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이 그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선 마더 테레사 수녀회가 비판을 수용하고 자신들의 업적과 살아온 나날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후 히친스가 주장한 비판에 대한 반박이나 반성 또는 새로운 주장따위를 해야한다. 그것이 민중을 자극하는 내용일지라도 말이다. 민중의 자극을 등에 업고 비판을 낸 개인이나 단체에 분노를 촉발시키고 그들을 억압하는 것 또한 그런 모든 행위를 방조하고 방치하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일 뿐이다.
십시일반으로 수도회에 자선을 했던 이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받은 막대한 자선기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알지 못하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소멸된다면 어떠한 심정들일까. 이른 바 자신의 인기를 위한 더러운 조건으로 기부를 한 기업가나 정치세력에게만 의로운 일을 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촛불잔치가 유권자가 피선거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 당선자 또는 그들이 재임기간 내내 부릴 수 있는 공복 (원래는 시민들이 부려야 하는데 말이다) 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데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멋진 일들이 대부분 비폭력적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는 것도 몹시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권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한 유권자의 40퍼센트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이가 지금 청와대에 있다.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놀란 민중들이 청계천에 나가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들중 40%는 어쩌면 그를 지지했거나 그에게 투표를 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체제 비판은 늘 유효하다. 그것은 우리가 일궈낸 성과다. 하지만 반대론자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광장에 나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선시킨 집단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공방의 핵심인물이 공부가 되었다는둥 수업이 되었다는둥 신문에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 아니다. 광장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운 많은 시민들의 노력, 그 진정성이 바보들이 아닌이상 확실하게 전달 되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확실하고도 유효한 감시체제망을 구축했고 언제든지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정당하게 개진할 방법을 찾아냈다. 이제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뜻을 보여주었으니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지켜볼 때다. 반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신공격이나 매장성 발언보다 자신의 참여가 어떻게 사회에 반영되어가는지를 지켜보는 여유도 때론 필요하다.
마더 테레사, 로마 카톨릭을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쩌면 성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한 비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잘못된 역사였다면 내가 몸 담은 체제나 자기 자신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미 자아비판중인지도 모른다) 타인이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을 했다고 해서 그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바른 비판태도가 아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자잘한 것들을 모조리 묵살하는 것도 비판적 민주주의의 대체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 . . . .
변증법적발전이 가능한 사회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싶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판타스틱 개미지옥 : 공감 하지만 슬퍼지는 책 (3) | 2008/06/24 |
|---|---|
|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5) | 2008/06/17 |
|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와 촛불잔치 (1) | 2008/06/16 |
| 3월의 책탑 쌓기 놀이 (9) | 2008/03/25 |
| 사유하는 인생을 향해 달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2) | 2008/03/25 |
| 흥미진진한 장편소설 : 핑거스미스 (3) | 2008/03/12 |
- Tag
- 자비를 팔다, 촛불집회, 크리스토퍼 히친스
- Response
- 0 Trackback , 1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