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
비가 내린다.
현관문을 연다.
이사한 집은 아직 낯설다.
양철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에 간밤을 뜬 눈으로 샌다.
어항에 형광등을 켠다.
깨소금과 다른 금붕어들은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언뜻보면 깨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자고 있는 것이다.
산 생선들을 키우기 시작하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난,
아침부터 야마다 리카의 목소리를 스무 번도 더 듣고 있다.
프리템포의 연주로 말이다.
I m a g e r y .
바람이 세다.
아니 바람은 잔잔하다.
세기는 약하지만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그것은
조금 차다.
언제부터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 이 바람은 더욱 차질 것이다.
그녀는 바람이 차면 외투를 꺼낼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올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스타일리쉬한 여인들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은 법이다.
여름엔 옷을 벗고,
겨울엔 옷을 입는다.
스타일리쉬의 차이는 옷을 입느냐 벗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저런 쇼핑 목록에 새로운 아이템이 추가된다.
백화점은 벌써 여름 상품이 시즌 오프 세일 채비를 하고 있다.
빠르다.
가을은 아직 북쪽 나라에 머룰러 있는데
부지런한 스타일장이들은 겨울 옷을 장농에서 꺼내 본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여름 비는 여름 비대로 운치가 있다.
뭐랄까.
시원함이 있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기온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는 범생이 출신 기상 캐스터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면 된다.
기온을 낮추는 것은 비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역할이다.
시간이 쌓여 흘러가는 것을 우리는 세월이라고 부른다.
비는 그저 그러한 세월의 하수인일 뿐이다.
우리는 하수인이 찾아 올때마다 감정의 폭이 커짐을 실감한다.
그리고, 꺼내 입어보던 외투를 침대 머리에 던져두고 상심에 젖는다.
이를테면, 그곳에 바다가 있다.
많은 인파를 품고 여름내내 퉁퉁 부른 콘 프레이크 사발을 떠올리게 했던 해변이 있다.
그 해변에 무수한 인간의 발자국이 조금씩 파도에 쓸려 내려간다.
즐거웠던 바다에도 비가 내린다.
바다는 곧 상념의 공간이되어 버린다.
Sea of heartbreak를 읊조릴 시기다.
POCO라고 하는 시덥지 않은 그룹이었던가.
지난 이년동안 바닷가에 단 하루 머물다간 인간에게도
바다는 늘 그리움의 존재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여름을 배웅하는 빗줄기를 보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떠올린다.
그곳엔 여름이 남기고 간 상념이 있다.
여름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있다.
그곳엔 여름이 머물다간 시간의 흔적이 있다.
나는 당분간 바다에 머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다가 주는 상념이 번거롭지만,
여름이 머물다간 바다에선 나를 반기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나는 그것을 느끼고 싶다.
나는 바다에 서 있다.
나는 여름이 머물다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멀리 코발트 블루의 해저가 회색 빛 하늘에 반사되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바다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침전중이다.
바다 깊숙히 들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바다는 비발디의 만돌린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가을의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잔잔한 신디사이져 소리가 더 크고 명확하다.
덕분에 나는 그녀를 잘 들을 수 없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물 속은 내가 예전에 살고 있었던 곳과 닮아 있다.
아무런 간섭도 없다.
단지, 리카와 돌고래만이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쓸쓸해짐을 느낀다.
나는 더이상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요사이 그 어느 것도 잘 견뎌내지 못한다.
사랑이 비로서 시작되고 있음을 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을 배운적이 없다.
사랑에 대처하는 요령 101가지라는 책이 존재한다면 당장 달려가 구매할지도 모를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나 같은 인간들의 안식처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외로운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식을 부양할 뿐이다.
서른이 넘는 세월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면 위로 조용히 내리는 비를 조용히 바라본다.
나는 빗줄기가 수면을 부딪히는 소리를 좋아한다.
또한, 떨어지는 빗방울이 베란다의 창문을 내려치는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검게 물들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는 여름이 머물다간 그림자가 짙게 베어있는 바닷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에어 서플라이의 음악을 백그라운드 삼아 정신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녀를 좋아한다.
나는 그녀의 어깨가 정열적으로 아이를 향해 들썩일때마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뒤에서부터 꼭 껴 안고 있다.
그녀의 제자는 영문을 모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녀석도 같이 껴 안는다.
아이는 반항하지 않는다.
나는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왜 그녀의 지도를 받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역시 껴 안을 수 밖에 없다.
비는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세상을 적시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아 왔지만 단 한줄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나는 가끔 비에게 교훈을 얻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도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세계를 골고루 껴 안고 있다.
다만, 오해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너를 포웅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은 법이다.
내가 너를 포웅하는 것은 단지 개인간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전 우주를 초월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내가 너를 안고 싶은 것은 이렇듯 거창한 것이다.
그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더운 여름의 치기정도로 느껴지는 것은
내 표현력이 전 우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포괄하는 거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일개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은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없는 행동이 거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면서 행한 모든 일들은 전부 모순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아는 데 딱 37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순서대로 파악하는데 3년이 걸렸다.
이제 실천의 시간이다.
나는 앞으로 또 몇 년을 사용해 그것을 실천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비는 여전히 대지를 적신다.
젖은 대지가 다시 마르기전까지 나의 사고는 계속 내 머리를 적실 것이다.
내 비에 젖은 사고 덕분에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내 비에 젖은 모습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 비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비가 멈추기 전에 그녀와 빗길을 걷고 싶다.
비가 멈추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싶다.
비가 멈추기 전에 말이다.
비가 내린다.
현관문을 연다.
이사한 집은 아직 낯설다.
양철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에 간밤을 뜬 눈으로 샌다.
어항에 형광등을 켠다.
깨소금과 다른 금붕어들은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언뜻보면 깨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자고 있는 것이다.
산 생선들을 키우기 시작하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난,
아침부터 야마다 리카의 목소리를 스무 번도 더 듣고 있다.
프리템포의 연주로 말이다.
I m a g e r y .
바람이 세다.
아니 바람은 잔잔하다.
세기는 약하지만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그것은
조금 차다.
언제부터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 이 바람은 더욱 차질 것이다.
그녀는 바람이 차면 외투를 꺼낼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올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스타일리쉬한 여인들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은 법이다.
여름엔 옷을 벗고,
겨울엔 옷을 입는다.
스타일리쉬의 차이는 옷을 입느냐 벗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런 저런 쇼핑 목록에 새로운 아이템이 추가된다.
백화점은 벌써 여름 상품이 시즌 오프 세일 채비를 하고 있다.
빠르다.
가을은 아직 북쪽 나라에 머룰러 있는데
부지런한 스타일장이들은 겨울 옷을 장농에서 꺼내 본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여름 비는 여름 비대로 운치가 있다.
뭐랄까.
시원함이 있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기온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는 범생이 출신 기상 캐스터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면 된다.
기온을 낮추는 것은 비의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역할이다.
시간이 쌓여 흘러가는 것을 우리는 세월이라고 부른다.
비는 그저 그러한 세월의 하수인일 뿐이다.
우리는 하수인이 찾아 올때마다 감정의 폭이 커짐을 실감한다.
그리고, 꺼내 입어보던 외투를 침대 머리에 던져두고 상심에 젖는다.
이를테면, 그곳에 바다가 있다.
많은 인파를 품고 여름내내 퉁퉁 부른 콘 프레이크 사발을 떠올리게 했던 해변이 있다.
그 해변에 무수한 인간의 발자국이 조금씩 파도에 쓸려 내려간다.
즐거웠던 바다에도 비가 내린다.
바다는 곧 상념의 공간이되어 버린다.
Sea of heartbreak를 읊조릴 시기다.
POCO라고 하는 시덥지 않은 그룹이었던가.
지난 이년동안 바닷가에 단 하루 머물다간 인간에게도
바다는 늘 그리움의 존재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여름을 배웅하는 빗줄기를 보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떠올린다.
그곳엔 여름이 남기고 간 상념이 있다.
여름이 흘리고 간 외로움이 있다.
그곳엔 여름이 머물다간 시간의 흔적이 있다.
나는 당분간 바다에 머물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다가 주는 상념이 번거롭지만,
여름이 머물다간 바다에선 나를 반기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 나는 그것을 느끼고 싶다.
나는 바다에 서 있다.
나는 여름이 머물다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멀리 코발트 블루의 해저가 회색 빛 하늘에 반사되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바다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침전중이다.
바다 깊숙히 들어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바다는 비발디의 만돌린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가을의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잔잔한 신디사이져 소리가 더 크고 명확하다.
덕분에 나는 그녀를 잘 들을 수 없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물 속은 내가 예전에 살고 있었던 곳과 닮아 있다.
아무런 간섭도 없다.
단지, 리카와 돌고래만이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쓸쓸해짐을 느낀다.
나는 더이상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요사이 그 어느 것도 잘 견뎌내지 못한다.
사랑이 비로서 시작되고 있음을 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을 배운적이 없다.
사랑에 대처하는 요령 101가지라는 책이 존재한다면 당장 달려가 구매할지도 모를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나 같은 인간들의 안식처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외로운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식을 부양할 뿐이다.
서른이 넘는 세월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수면 위로 조용히 내리는 비를 조용히 바라본다.
나는 빗줄기가 수면을 부딪히는 소리를 좋아한다.
또한, 떨어지는 빗방울이 베란다의 창문을 내려치는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검게 물들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는 여름이 머물다간 그림자가 짙게 베어있는 바닷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에어 서플라이의 음악을 백그라운드 삼아 정신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녀를 좋아한다.
나는 그녀의 어깨가 정열적으로 아이를 향해 들썩일때마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뒤에서부터 꼭 껴 안고 있다.
그녀의 제자는 영문을 모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녀석도 같이 껴 안는다.
아이는 반항하지 않는다.
나는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왜 그녀의 지도를 받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역시 껴 안을 수 밖에 없다.
비는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세상을 적시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아 왔지만 단 한줄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나는 가끔 비에게 교훈을 얻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도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세계를 골고루 껴 안고 있다.
다만, 오해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너를 포웅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은 법이다.
내가 너를 포웅하는 것은 단지 개인간의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전 우주를 초월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내가 너를 안고 싶은 것은 이렇듯 거창한 것이다.
그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더운 여름의 치기정도로 느껴지는 것은
내 표현력이 전 우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포괄하는 거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일개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은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없는 행동이 거대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면서 행한 모든 일들은 전부 모순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아는 데 딱 37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순서대로 파악하는데 3년이 걸렸다.
이제 실천의 시간이다.
나는 앞으로 또 몇 년을 사용해 그것을 실천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비는 여전히 대지를 적신다.
젖은 대지가 다시 마르기전까지 나의 사고는 계속 내 머리를 적실 것이다.
내 비에 젖은 사고 덕분에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내 비에 젖은 모습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 비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비가 멈추기 전에 그녀와 빗길을 걷고 싶다.
비가 멈추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싶다.
비가 멈추기 전에 말이다.
Freetempo (feat. Rica Yamada)
태그 : 雨中散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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