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개미지옥 - 10점
서유미 지음/문학수첩북앳북스

만약 소설이 재미를 떠나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놀라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재미도 없이 감동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작가들은 대개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이 마치 노벨상을 위한 전주곡처럼 여겨 작품활동을 한다. 재미가 우선이 아니라 소설은 재미가 전부이다. 오늘날 스스로 값을 지불하고 무엇을 산다는 것은 그만큼의 메리트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순수소설이든 추리소설이든 재미를 얻고자 하는 독자의 마음은 진배없다. 고등어를 잡기위해 낚시를 하던 어부가 고래를 잡았다면 이 얼마나 횡재인가. 감동은 고래에 가깝다. 감동을 얻고자 책을 잡았다면 실망하기 쉽다. 요컨대 기대심리를 낮출수록 뒷통수를 맞을 가망성이 희박해지는 것이다.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까지는 연결해주어야 한다. 그게 작가의 의무다. 가령 어떤 소재로 관객에게 접근하고자 할 때 재미를 붙여서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감동보다 공감을 중요시하며 그러한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한다.

서유미의 판타스틱한 이 책은 깊이가 없다. 하지만 책 안엔 적어도 공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별로 재미없게 인물들의 얽혀놓은 것이 씁슬하긴 하지만 그것은 비단 서유미의 책임만은 아니다. 농담이나 유머는 대다수의 한국작가들에게 결여되어 있다. 마치 비타민 B 결핍으로 각기병을 앓는 아이처럼 한국 소설들은 너무나 진지하고 너무나 비정할 뿐이다.
거기에다 소재마저 매정해버리니 이 책은 참 제목처럼 개미지옥을 연상케 한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는 것은 여자들의 기본적인 욕구다. 하지만 그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려면 그마만큼의 자본주의 승자라야만 가능하다. 88만원 세대가 백화점에서 세일기간 알바를 한다고 해서 한 개에 88원짜리 토드백을 지를 수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자본주의는 늘 그렇다. 888만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을 위한 장소를 차려 놓고 88만원짜리 월급쟁이들에게 밑밥을 뿌린다. 옷을 사는 순간 자신들이 888만원짜리 인간과 비슷하다는 착각을 선물하지. 무이자할부, 세일, 사은품 따위로. 싸구려 월급쟁이들은 제 가랭이가 찢어지든지 말든지 플라스틱을 긁어대고, 결제일이 다가오면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 핸드폰을 눌러댄다.

- 나는 잘 몰라 당신이 말해봐.
- 뭐를?
- 쇼핑에 대해서. 당신들의.
- 그게 말하자면 이런거야. 구두가 필요해서 한 켤레를 사. 검정색의 펌프스지. 발도 편하고 이뻐. 집에와서 거울 앞에서 다시 한 번 신어보는 거야. 그리고 옷장을 열어 검색을 하지. 맞는 옷을 찾아. 그럼 십중팔구 마음에 안들어. 그럼 다음 번 백화점 방문때는 그 신발에 맞는 바지를 한 벌 사는 거야. 그럼 이번엔 윗도리가 매치가 안돼. 답답하지. 그럼 이번엔 블라우스를 하나 지르는거야. 그러고나면 구두와 블라우스에 어울리는 숄더백이 또 갖고 싶어지는 거야. 이런식이지. 무한반복이야. 끝이 안나. 어느 새 지르다보면 계절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시작해야 하는 거야. 봄에 긁었던 카드 값이 없어지기도 전에 여름 옷을 카드로 긁고 있는 셈이지.

이 책은 적어도 같은 경험을 가진 쇼퍼홀릭커들에겐 어느 정도의 공감을 가져다 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공감만큼 재미가 따라오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다른 한편으로 그 공감이라는 것에 자유로운 여성들이 부럽다. 그들은 대개 부자이거나 옷투정으로 젊음을 허비하는 가련한 중생이 아닐것이기에 말이다.

가난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옷을 팔고 얻은 품삯으로 낮은 등급의 옷가게로 이동해 백화점의 유명 브랜드를 카피한 제품을 깍아가며 사는 것은 이제 자본주의의 하나의 기본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그런 소비패턴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카드와 미디어가 없었다는 점이 지금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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