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정말 남한 아이였니? 믿기지 않구나, 얘야.
이 영화를 보는 날, 테레비에선 거대한 정치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 말이다. 이미 재생 능력을 상실한 가난한
나라
북한에서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어 냉각탑을 폭파시키는 장면을 바라보며 성김 미국무부 한구과장이
북한측
인사와 감격적인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도 수 많은
민초들이
가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과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강하고 있었을
터다.
그것이 역사적 아이러니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에게 가난은 공포다. 가난은 죄다. 재미있는 것은 공포를 조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게 세상이라고 가르친다. 가난하지만 가족이 모두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것은 허울좋은 말장난일 뿐이다. 건강은 가난에 반비례하게 마련이다. 돈이 많은
자가
빨리 죽는 다는 통계는 없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주민들의 평균수명이
짧다.
가난한 나라에 출산율이 높은 것은 자식중 하나라도 살아날 확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부모를 부양한 자원을 확보해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사회는 늙어버리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보험삼아 생산하는 것이다. 남한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그런 세상이 지배한다. 무능한 독재정권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아우성을 잠재우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여 미국인이 보는
앞에서
콘크리트 탑을 폭파하는 것이다. 그 돈이면 함경도 주민 대부분에게 결핵약을
보급하고
겨울을 날 수 있는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남한에도 정권이 바뀌었다. 이곳은 지금 미친소따위를 먹을 수 없다면 분기탱천한 피플들이 자신들이 뽑은 정권을 부정하며 연일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행진하기 위해 투쟁중이다. 촛불을 들지 않고 입을 놀리는 인간들에게 치도곤을 안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80년대시절 정권을 부정하며 술을 마시다가는 안기부로 삽시간에 끌려간다는 분위기와 다를바 없다. 다행이도 이곳에 사는 대부분은 최악의 가난을 면했다. 때문에, 고기의 질과 자신의 건강이 다른 동포의 아사보다
중요해진지 오래다. 아빠를 찾아 몽골의 사막을 정처없이 떠도는 소년의 존재는 뉴스데스크에서도 식상한 정보일뿐이다. 남한정권은 북한이 미국을 포함한 주변 6자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식량을 주지 않는다고 심심하면 으름짱을 놓는다. 정치인들의 입방정과 사사로운 감정싸움으로 북한의 피플들은 연일 아사로 죽어나가고 있다.
영화가 가족의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남한쪽 아이였으면
그
시간에 학원에서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며 편의점 김밥으로 배를
채울
시간이었다. 그 시간 북한출신 아이는 생전처음 가보는 몽골여행은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처절한 행태로서의 지옥말이다. 그곳엔 사람하나 없고 서울에선 그
흔한
가로등 불빛하나 없었다. 아이는 차가운 사막의 거친 땅바닥에 지친 몸을
누이고
낡은 추억을 꾸고 있었다.
내가 미친형사 철중씨보다 이 영화를
먼저
고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타인의 가난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음을
과시하고
싶었다. 저런 것은 민중을 선동하는 싸구려 영화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렇게
외치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가당찮은듯이 웃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웃음은 훨씬 뒤늦게
나왔다.
성김 한국과장이 북측인사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있는 남한의
뉴스를
볼 때 말이다.
나는 결핵약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