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를 읽고

  • Posted at 2008/06/28 14:06
  • Filed under
  • Posted by 버트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상세보기
윤지강 지음 | 예담 펴냄
여자가 아니라 시인이기를 갈망한 허난설헌의 삶과 사랑의 노래! 허균의 누이이자 조선시대 높은 신분의 벽을 뚫고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했던 조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황진이, 신사임당과 더불어 가장 많이 희자되는 조선의 여인이지만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허난설헌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허난설헌의 애달픈 생애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씨줄로, 그녀의 시 세계를 날줄로 하여 그 삶을 복원해놓았다.


책을 읽기전에 난설헌, 허초희를 지칭할 때 "아하, 조선시대 천재시인!" 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 (물론 저자 윤지강은 비분강개하겠지만)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면 그들은 대개 난설헌을 묘사할 때, "아하 홍길동전을 지은 조선전기의 문인 허균의 누이!" 이렇게 씨부리는 작자들이다. 나는 물론 후자에 속하며 그렇게 씨부리며 삼십여년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여자는 이름이 없는 미약한 존재로 조선시대처럼 아녀자를 부를 때 파주 염씨나 안동 김씨로 불러줘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상것들이라면 나주댁이나, 영월댁으로 묘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조선초 허씨집안의 막내딸 난설헌은 어찌된 것이 초희라는 이름을 달고 활약했다 한다. 대관절 이리 분통터지는 노릇이 어디 있을까. 나는 대한의 남자임에 이에 자극받아 스스로 시인임을 발설했던 고약한 여성을 찾아 읽어볼 수 밖에 없었던 터. (사악한 것 같으니라고 살아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사대부 자제들을 골탕먹이더니 수백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그 방자함이 이를데없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하늘같은 남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니 미상불 요녀가 아닐수 없다!) 해서 수고를 아껴가며 토요일의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가며 친히 그녀의 족적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윤지강은 서문에 이렇게 밝힌다.

"황진이는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며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성적코드에 맞춰 소설과 영화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신사임당은 모성애 역할로 가정과 사회에서 갈등하는 현대 여성들에 현모양처의 역할 모델로 계속 소비되고 있다."

이 어인 망발인가. 황진이가 현대에서 그 생명력이 오롯하게 확대 재생산해 나가는 이유는 요즘 여자들이 당췌 남자들의 주연에 대가리만 삐쭉 내밀고 사주는 안주만 처먹을 뿐, 당췌 시 한 수 읊지 못하는 부박함으로 중무장한 무식스러움을 개탄하는 대한 남아들의 안쓰러운 회환이거늘, 왜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일찌기 여자란 기녀처럼 남자 무릎에 살포시 앉아 빈잔에 술을 채우며 양물이 솟구치도록 정성을 다해 엉덩이를 돌려야 하는 게 아니던가. 그리고 신사임당이 진취적인 사회를 갈망하는 여성들을 억압하는 구세대적인 롤모델로써 기능한다고? 어허, 이거야 참. 귀곡산장 주인할멈 이홍렬이가 양물을 떨어뜨려 정말로 여자로 환골하는 것만큼 어이가 없는 말이로세. 어디 몇자 줏어들었다고 독자들에게 함부로 게정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사임당이 현대의 롤모델이 되야 하는 이유는 고액권 화폐에 여성의 초상화를 넣을 만한 인물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덧붙여 말하자면 스무살이 되어도 스스로 라면 한그릇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짐에 개탄하는 피끓는 미래남편들의 애정어린 목소리가 아니던가. 그래가지고 남편을 어찌 잘 모실 수 있겠는가. 밖으로 남편의 가문의 무궁한 발전과 시부모의 건강을 도모하며 안으로는 가문의 씨받이로서 최대한의 힘을 아끼지 않고 두루살펴 대를 잇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거늘 당췌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책 표지는 불온하게도 빨간색이다. 쌍팔년대부터 자고로 빨간책이라 하면 남녀상열지사를 자세히 묘사한 치졸한 내용이나, 빨갱이들의 지침따위를 해석한 졸렬한 책들이 대부분이었잖은가. 나라가 어찌되려고 이러한 책들이 횡행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가가 미친소파동으로 존망이 위태로울 때 한가하게 토요일에 출근해 이러한 불온서적을 읽어야 하는 소수의 반동분자들을 즉각 색출하여야 마땅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예담에서 나온 이 책이 단 1쇄밖에 찍지 못한 것이리라. 현명한 대한의 국민들이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부단한 애국심으로 의기투합했기에 이러한 책들이 쉽게 사장되리라 믿으며 내 이 치유한 감상을 마무리할까 한다.

위대한 남자세상을 위하여, 다함께 차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