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나라의 뭉클한 영화 - 누들

  • Posted at 2008/08/26 10:12
  • Filed under 영화
  • Posted by 버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쟁국가에서는 역시 여자들이 집안을 이끌게 되어 있는가 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소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스라엘리 Israeli 는 무엇일까. 무엇으로 그들을 정의하는가. 유태인? 야훼에게 선택된 유일민족? 중동의 군사대국? 샤일록? 모든 시민들이 전부 천재? 불법적으로 가자를 점령하고 같이 살아가는 아랍민족인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나쁜 사람들? 대체 뭘까?

줏어들은 정치적인 이슈들을 제외하면 그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처럼 의무적으로 군역의 의무를 진 민족인 셈. 상대적으로 전선에 나갈 확율이 낮은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삶은 무게감 있게 다가 올 뿐이다.

억압정책은 희생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주인공인 항공기 승무원 미리도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것도 두번이나 남편을 잃은 기구한 운명. 다행히 중산층인 그들은 중국여성을 파출부로 부릴 특권을 누린다는 점이 서구열강의 집안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점일까. 아리엘 샤론의 강력한 불법이민억제정책의 희생양이 된 중국인 파출부 덕에 졸지에 중국인 아이를 돌보게 되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아이는 히브리어를 모르고 어른들은 중국어를 모른다. 아이는 엄마가 그립고 그 아이를 떠 안은 미리의 가족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자. 이 아이를 어찌 처리(?) 해야 잘 처리했다고 텔아비브에 멋지게 소문이 날까.

문화가 다르지만 결국 아이일뿐인 꼬마때문에 가뜩이나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미리네 집안은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더군다나 미리는 동거하게 된 친언니인 길라와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딸까지 낳아 잘 선던 언니 길라는 최근 남편과 별거중이다. 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미리는 형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지만 언니 길라는 오히려 그 점이 성가시다. 얄굿게도 형부는 미리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길라는 그 점이 못마땅하지만 미리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형부는 조언자일뿐 러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자각하고 있는 언니 길라지만 뒤틀린 결혼생활의 책임을 전가하기엔 동생이 좋은 먹이감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매의 갈등속에서 엉뚱한 중국인 꼬마의 등장은 집안문제 family affair 를 더욱 가열차게 뒤틀어 놓는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호남형의 여행작가는 알고보니 언니 길라의 원나잇스탠드였던 상대. 결국 언니부부의 불화의 시발점은 한순간의 방심이었음이 들어난다.

자, 우리의 동양소년은 이러한 복작미묘한 이스라엘 집안의 해결사가 되어줄 것인가. 영화가 끝이 있다면 분명 소년은 그런 역할로 캐스팅 되었을 터이다. 미리의 가족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아이를 본국 (중국)으로 돌려보네는 이른 바 출애굽에 성공하게 된다. 길라는 원나잇스탠드를 따라 사랑을 재시작한다. 이제 남은 것은 주인공 미리다. 그녀는 과연 아이와 파출부 엄마의 재회를 통해 자신 스스로도 새출발을 할 수 있을까?

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로 중무장한 영화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도 결국 우리와 같구나. 하는 것. 그리고 중국은 정말 이런 저런 나라로 인력을 수출하고 있구나 하는 점.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막상 영화화가 될 정도로라고 생각해보면 역시 장난이 아닌 것이다. 온가족이 손 잡고 극장 나들이 하기 좋은 소재의 영화다. 다만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나같은 무식한 인간에게 이 영화는 오로지 자막만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은 곤란하기도 했다.

(증앙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