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 일본전 김경문 야구의 진수를 보다
- Posted at 2008/08/22 15:38
- Filed under 일쌍
- Posted by 버트
팽팽한 접전속에서 1:2 끌려가고 있던 7회말, 한국에게 좋은 찬스가 찾아온다. 1사후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 마운드엔 일본 최고의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 전성기때의 선동렬을 연상시키는 1점이하의 방어율로 일본야구를 주무르고 있던 투수는 대회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거포와 정면승부를 피한다. 결과는 베이스 온 볼스. 1루로 천천히 걸어나가는 사이 한국 덕아웃이 바쁘게 돌아간다. 라인업에 들지 못했던 쾌조의 정근우. 순간 나는 전광판을 본다. 이제 겨우 7회다. 어떤 미친 감독이 가장 잘 치고 있는 거포선수를 뺄까 싶었다. 1회부터 잔뜩 쫄아서 엉성한 플레이를 연발했던 고영민과 수비가 겹치기에 아마도 대타 작전을 지시하는 가 싶었을 거다. 그러나 그것은 배짱없는 째째한 야구인들의 속 좁은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었다.
그전타석까지 총 3개의 볼넷을 얻어낸 이대호가 덕아웃으로 사라지고 타석엔 여전히 고제트가 만능팔을 다듬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거포를 빼고 고제트를 믿는다? 결과는 성공. 짧은 안타로 주자는 1루와 2루. 작전 성공. 하지만 큰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는 강민호에겐 후지카와 규지는 어려운 상대였다. 공끝에서 밀렸다기보다 초반 경기주도권을 내 준 볼배합에 머리가 복잡했던 듯. 여기서 김감독은 이진영을 대타로 낸다. 당연하다. 어차피 10타수 무안타의 선풍기 박진만은 투아웃 주자 1,2루는 그림의 떡일 뿐이기에. 감독의 덕아웃에서 몰래 로또를 긁고 있는 사이 이진영은 끈질긴 승부끝에 마침내 적시타를 때려내며 일본이 자랑해마지 않는 강속구 마무리 투수 규지를 무너트린다. 스코아는 2:2.
하지만 김경문 야구를 무시하는 떨거지들은 우려하기 시작한다. 다시 클린업 트리오에게 기회가 돌아올텐데 이대호 빠진 한국 중심타선은 허접해져 버린 것. 그 허접타선의 중심엔 대형 선풍기 이승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야구위원회의 삼고초려에 시달리며 간신히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던 승엽. 그는 기다렸다는듯이 7경기 내내 그리고 오늘 준결승 초반까지 더위에 지친 관객들에게 대형 선풍기를 가동하며 땀을 식혀주고 있었던 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 내내 거침없이 방방이를 휘둘러 안타를 양산해 내던 이용규가 안타를 치고 무사에 진루한다. 다음타자는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믿게지지 않는 젊은영웅 김현수. 다음이 못미더운 팬들은 예선전에서 그랬던것처럼 이와세를 상대로 깔끔한 장타를 한 개 처주길 기대하지만 결과는 삼진. 원아웃에 주자 1루. 드디어 등장한 일제 선풍기 이승엽. 더위에 지쳐있던 1루측 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왼쪽 타석에 등장. 감독의 똥배짱은 이승엽의 선풍기가 시원하게 멈춰줘야만 가능할 터. 그가 결국 해주지 않으면 포지션이 중복된다고 한사코 한국을 휩쓸고 있던 거포 김태균을 뿌리치고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한 선수를 일본에서 납치해 올 명분이 서지 않을 터. (어쩌면 그 다음이 김동주니까 감독은 계속 로또를 긁어볼 수 밖에 없었을 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승엽은 앞선 타석에서도 무사 1.3루의 좋은 찬스에서 멋진 타점을 올리며 투아웃을 획득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1아웃. 오금이 저려 자리에 서 있지 못하는 김감독이 연신 청심환을 삼켰을지도 모를 터)
과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실감나더라. 이승엽의 타구는 우측 담장을 사뿐히 넘어 버린다. (순간 가장 서운했던 것은 1루측 관중들이 아니었을까 싶다만) 6차전까지 끊임없이 선풍기를 가동하느라 무리했던 승엽선수. 감독의 배려로 하루 쉬었던 네덜란드 전이 그에겐 오히려 괴로움이었을까? 땀을 날려주던 시원한 선풍기는 예선전으로 만족해 버려야 했던 1루측 관중들의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승엽이 한바퀴 돌아 홈에 들어왔을 때 이와세의 머리에선 굵은 (정말 굵더라 HD 쵝오!)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후의 경기는 사족일 뿐이다. 여기서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 야구는 늘 그렇듯이 믿었던 선풍기가 가동을 멈추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이기는 법이다. 그것을 알고 계속 선수를 출전 (심지어 감독 김경문은 소극적인 타순조정따위를 시도해 보지 않았다!!! 이정도면 솔직히 똥배짱이라기 보다 정신이 나간듯해 보인다만) 시켰던 감독의 의지에 솔직히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김감독은 또한 오늘 단 한 개의 번트를 대지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그는 선이 굵은 야구에 믿음을 접목하는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8전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감독의 멋진 야구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선풍기를 멈추고 홈런을 친 이승엽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살의 어린나이에 난다 긴다한다는 일본의 거액연봉자들을 차례로 격침시켜 호시노 감독의 주둥이를 다물게 만든 스마일 김광현 소년등등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정말 대단들 하다! 니들! 병역면제의 혜택은 너희 스스로 딴 결과물임을 기꺼이 인정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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