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방문하다

일쌍 2008/09/29 14:40 Posted by 버트
내 인생 결혼식이라는 곳에서 사회를 본 것이 총 2번이다. 스스로가 비혼주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비웃듯이 세레모니의 사회를 봐달라는 청탁이 있었다. 고사를 하기엔 결혼에 목숨건 젊은 청춘들의 눈망울이에 몹시도 애달았다. 까칠한 인간이지만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승복해 결국은 두 건의 인륜지대사를 진행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 오늘 점심 같이하자.
- 머? 농담이지? 나 서울 아냐. 알잖아?
- 알아, 임마. 내가 그리로 간다고.
- 서울에서 족히 2시간은 밟아야 오는 거린데.
- 강원도라 해봐야 엎어지면 코 닿는 땅덩어리에서 얼마나 떨어졌다고 엄살이야.
- 출장이야?
- 뭐, 그런셈.
- 비워둘게.
- 도착하면 전화하마.

사회만 봐주었을 뿐이지 신접살림에 두부 한 모 보태지 못한게 아쉬웠던 터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자신의 2세를 보고 가라는 녀석을 앞세웠다.

- 불문곡직하고 근처의 수퍼를 알려다오.
- 가까운 곳에 있긴 한데 왜?
- 왜는 니미 일본의 옛이름을 왜 들먹여. 불문곡직의 의미부정이냐? 까불지말고 어서 불어.
- 그냥 가도 된다니까.
- 아 그 새끼 계속 말 섞네. 니가 그러면 그러세요. 그럼 집으로 갈까요? 하고 내가 물러설까봐? 어서 위치를 대. 잔말 말구.
- 조 앞에서 언덕 지나자마자 오른쪽 건물. 그 앞 주차장에 차를 대면 되겠다.
- 진즉 그럴것이지. 말 늘어지게시리.

농협이 운영하는 무슨 마트였다. 오후 한가한 시간이라 장바구니 든 여성들의 수가 드믄드믄 보였다.

- 뭐살까?
- 와이프가 휴지면 좋아하더라.
- 그래? 그럼 어디보자. 이거 어때?
- 싼거 사.

24롤이 박혀있는 비닐박스를 들어 녀석에게 건네고나니 이것으론 뭔가 허전하다. 명색이 첫 방문 아닌가. 비단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나를 초대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림집 방문은 분명하니 하나론 어쩐지 성이 차지 않았다.

- 와이프 포도 좋아하나?
- 포도?
- 여기 무슨 행사하나봐. 주욱 늘어 놓고 팔고 있네.
- 됐어.
- 돼긴 씹새/ 이 것도 하나 더 사자.

계산대.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캐셔가 합산된 금액을 부른다. 나는 카드로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을 열고 별로 반갑지 않은 내 인생의 원수인 단골카드를 내민다. 그러자 캐셔가 기계적으로 반문한다.

- 적립카드는요?

에?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고민 한다. 강원도에 있는 친구 집에 왔는데 적립카드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분명하리라. 너무 쫀쫀해 보일까 두렵기도 했고. 그냥 호기있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하고 오무린 입을 여는 순간.

- 4536요.

앗. 뒤를 돌아보니 뭘 이런걸 다 사려고 하는 미안한 표정을 한 10분 전의 친구는 온데간데 없고 새침한 표정에 계면쩍게 고개를 4도쯤 왼편으로 젖히고 있는 결혼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핸드폰 번호의 뒷번호만 대면 카드없이도 적입이 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마트였나 보다.

나는 주차장으로 걸어와 트렁크를 열고 거대한 휴지박스를 실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데 피워 물었다. 포도박스를 들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거침없이 뿜어 낸 친구는 아직이다. 느려터진 놈. 물이라도 버리러 간 모양인게지.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역시 결혼하는 인간들이라는 게 실감난다. 결혼을 진행해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나같은 변두리적 인간따위는 그들의 현실감 있는 미래적 행보를 결코 따라잡을 없는 것이다.

멀리 마트 앞 정문에 녀석이 나타났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밟아 껐다. 이제 녀석을 태우고 녀석의 집으로 가야 시간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녀석의 집 같은 곳 따위에는 결단코 가고 싶지 않다. 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대체 나는 서울에서 100킬로가 넘게 떨어진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도 사회적으로 사회적인 범주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중임을 되뇌인다. 미소를 짓는다. 녀석이 차 앞으로 다가오고나니 포도박스를 들지 않은 손에는 웬 플라스틱 바가지 비슷한 무엇인가가 들려져 있었다.

- 일정액을 구매한 손님들에게 이것을 나눠주길래 받아가지고 오느라고.

녀석은 내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주섬주섬 답을 늘어 놓고 있었다. 늦여름의 시골 하늘은 다른 때 보다 더 없이 높아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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