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사귄다는 것은 참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다. 일생일대 이다지도
중요한
이슈를, 이토록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무모한 짓거리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
출근 잘 했어?
- 응.
- 식사는 했어?
- 아니.
-
저런저런 왜 안드시고? 그 많은 수업은 다 어쩌려고?
- 말도 마.
아침부터 한 바탕하느라고 힘이 쪽 빠져서.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
점을 내가 알아채고 그 점을 좀 부각시켜주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가
전화기
속으로 빨려들어와 내 귓가를 강하게 때린다. 나는 목소리에 단호함을 담아
강력하게
외쳐준다.
- 아니 대체 어떤 인간이 귀하디 귀한 마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거야!
내 아부성 짙은 응원에 약간이나마 기운이
난
듯. 아침의 부당한 시츄에이션을 강한 어조로 설명하며 자신을 화나게 한
상대를
질타한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그녀가 계속 화를 삭이도록 부축였다.
- 나쁜녀석들이네.
- 그렇잖구!
- 암튼, 저만 안다니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새겨 듣고 행동하는 인간이 이렇게 드물어서야. 어디 원.
-
말도 마. 생각하면 머리털이 죄다 곤두 서.
물론, 이런
식의
대화는 버전 업 된 것이다. 나는 그 전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냉정한 제 3자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으며 나는 다시 기분이 급전직하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연애를 잘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가 구태여
상황을 잘 모르는 나에게 모든 정황을 다시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는 이유는 그것의 잘잘못을 따져 객관적인 판단을 제시하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옆에서서 같이 피켓을 들고 자신이 구호를 외칠 때 거침없이 맞장구를 쳐달라는 의미, 즉 아군의 확보를 목표로 했던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같이 흥분을 해주고 난 후 간신히 분이 가라앉으면 따스한 커피라도 건네며,
- 어느면에서 보나 분명하고 냉정하게 행동한
분별있는 당신에게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안타깝지만 좀 쉬었다가 2회전을 치룹시다.
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닫는다.
어리석은
버트야, 그녀가 원하는 것은 3류 재판관 따위가 아니야. 그저 자신의
부당함을
이해하고 - 또는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 그 부당함에 지친 어깨를
감싸안으며
목소리 높여 응원해 줄 수 있는 편안한 애인이었던 것이다.
연애는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