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2008/10/01 12:23 Posted by 버트
미친년 - 10점
이명희 지음/열림원

페미니즘은 내 인생에 있어서 거대한 도전이다. 숙명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나태에 빠진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날, 여자인 내 여자친구가 그렇게 묻더라. "아, 이제 당신이 왜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에 빠져 드는지 알 것 같다." 4년간을 사귄 사람도 이제서야 그 사실을 조금 눈치챌정도로 페미니즘은 아직도 이 사회에서 요원하다.

페미니즘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목침을 집어던지며 흥분하는 인간들에게 나는 차라리 '휴머니즘'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하지만 인권이 자본주의에 발목잡힌 가부장적 세상에서는 휴머니즘도 결국 판타지속 유토피아일 뿐이다.

이 책은 이명희가 9명의 미친년이라는 소릴 들으며 거친 세상을 돌파해 나갔던 - 페미니스트들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은 이제 막 이 세상속으로 뛰어드는 어린 여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담보삼아 여성의 삶과 미래에 대해 멘토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이 책을 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해갈의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이 책은 성공을 지향하고 성공만이 페미니즘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기억될 소지가 있을지 몰라도 평범한 여성으로 올곧게 살아가고픈 이 땅의 보통여성들에겐 조금 먼 나라의 이야기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학을 나온 중산층의 딸들만이 이 세상에 주체가 되어 존재하며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죽기 오분전까지 악을 쓴 창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여성주의로 이끄는 지름길이길 바라는 남자로서 더더욱 그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를테면 네가 지금 대학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특히 네가 여자라면 이 책은 다른 어떤 시시한 요리사진 따위를 늘어 놓은 실용서보다 읽어 볼 가치가 있다는 점에선 의심할 필요가 없으리라. 존경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말처럼 요리따위는 먹고 싶은 사람이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뱀다리

책 제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는 '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하다' 이다) 지하철 퇴근길에 이 책을 열심히 일다가 내릴 때 쯤 책을 접자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 둘이 웃었다. 아마도 미친년이라고 크게 인쇄된 책의 표지를 보았던 모양이다.

그 젊은 여성의 손에는 나란히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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