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메타정보가 뜨니 한결 편하다. 사진 정보를 보아하니 2005년에 찍은 거다. 내 생애 첫 DSLR인 올림푸스의 E-300을 질렀던 바로 그 때. 7인치의 본차이나에 나박썰기를 마친 채소 몇 알을 준비해 두니 우선 시각적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피망의 격렬한 색감에 투박한 서양송이 몇 조각 그리고 양파 몇 조각들. 언제부터인가 야채라고 압도적인 일본식 한자어 (일본어인 야사이라면 외국어 공부차원에서라도 즐겁게 읽어주겠는데 야채는 도대체가. 끙) 가 한국 식탁을 유린할 때, 돌아가신 멘토의 입에서 채소라는 다소 투박한
단어가 자주 출몰할 때, 비로소 나는 채소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거다. 야채라고 아무생각없이 녀석들을 부를 때는 애정이 없었고 또한 녀석들을 즐겨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채소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하자 놀랍도록 녀석들이 정감있어 보였고 입속에서 아사삭하고 늘 정답게 부숴지기 시작했다.
불을 다루는 시기에
나는
늘 유심히 버너를 바라보곤 했다. 버너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도시가스의 화력에
나는
늘 넋이 나가곤 했었다. 와, 정말 뉘집 깨스인지 마치 발사하면
뿜어
대던 화력은 무쇠팔, 무쇠다리, 로켓트 주먹의 소유자인 마징가 Z가 뿜어내는
추진력이
안부러울지경. 아, 황홀해라. 이런 버너에서 요리하다가 집에서 팬이라도 한 번
달굴려고
딱딱 소리를 내며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리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지는 것
같다.
빌어먹을.
코팅팬의 발달과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버너가 만나면 기름따위가 필요없어진다. 재 몸이 뜨거워 색이 검게
변하는
것이 애처러울 뿐. 해서 올리브 유 몇 방울을 드랍해 주기도
한다.
인간도 사이판에 놀러가면 온 몸에 개기름을 바르고 뜨거운 햇살에 온
몸을
지지는데 멋드러진 채소에겐 왜 그런 호사를 선사하는데 인색하냐! 라는 소리
들릴까봐
재빨리 몇 방울만 말이다.
사이판에
누워있는 몸매 착한 처자의 얼굴을 기억해 내느라 잠시 딴청을 피웠다가는
이렇듯
채소의 사각을 검게 변색시킬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자고로 채소를 볶을
때도
늘 구절산에서 30년째 묵언수행을 하는 제니퍼씨댁 행랑아범처럼 그렇게 묵묵히 볶아야
하거늘!
어쨌든, 2005년에 난 가끔 채소를 이렇게 볶아서 혼자 포크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