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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하순에 접어들자 가을이 물러가려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 이봐, 올 해도 떠나나, 그렇게 쉽게?
- 쉽게? 쉽지 않아. 때가 되면 갈 뿐이야.
- 겨울이 올테지?
- 내가 가면.
- 딱히 네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너보단 겨울이 좀 더 정이 덜 가.
- 그럴테지.
- 언제쯤 모습을 완전히 감출껀데?
- 11월쯤.
- 그렇다면 이른바 지금의 시즌의 절정일텐데 벌써 짐을 싸나?
- 계절은 이삿짐이 아니야. 포장이사를 불러서 몇시간만에 헤치울수 있는 게 아니라구. 너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 한 번에 싸서 한 번에 이동해버리는 그런 싸구려 이동이 아니야.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만큼의 작은 변화가 일어나는 거야. 그 작은 변화에 너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단추를 위로 올려 잠그는 것이야. 그리고 하얀 입김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난 후겠지.
- 가을에 대한 보편타당한 설명이야.
- 그래.
- 하지만, 감흥은 없어. 요컨대 시즌을 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겨운 노릇이야. 시즌이 바뀌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 스스로가 느껴야 해. 뜨내기인 가을따위가 스스로에 대해 지껄이는 것따위로 정의될 수 없어. 나는 보편적인 진실보다 상징적인 메타포가 필요해. 그게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야. 너의 지겨운 이삿짐 메타포는 9시뉴스의 9시정각 시보 광고보다 지겹고 고리타분해. 아웃이야. 차라리 너를 빼고 3계절로 1년을 구성하는 게 더 좋겠어. 설명하지마. 가을이 가을 스스로에 대해 피력하는 짓 따위는 생각만으로도 두드러기가 난다구.
- 심한데.
- 심해도 할  수 없어.
- 그렇다면 요컨대 너의 가을은 어떤 것이지?
- 내 가을,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래서 인간들은 사진을 찍지. 그리고 현상을 해. 그리고 검토를 해. 내가 눈으로 본 모습과 사진이 현상해 낸 대상을 비교해. 그리고 생각을 첨가해 느낌을 늘어 놓지. 그곳엔 가을이 있어. 가을이라 더 부지런한 벌이 있어. 가느다란 허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아리따운 코스모스가 있지. 그리고 9월의 그녀가 있어. 가을을 설명하는 수사에 종점은 사랑하는 그녀의 몫이야. 그것은 절대 너같은 계절따위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야. 그곳에 사랑이 있지. 조만간 무식한 얼굴을 한 겨울이 다가와 네가 일군 근사한 성과들을 모두 얼려죽인다고 해서 네 고마움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아니야. 나로선 네 성과물에 일희일비하는 내안의 그녀가 실망하는 모습이 다만 안타까울 뿐이라고. 그녀의 아름다운 목 선이 두터운 머플러로 감춰지게 된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아. 어차피 겨울은 봄의 화려함을 예고하는 프렐루드적 역할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오만하지 않지. 덕분에, 겨울이 추울수록 인간은 봄에 열광해. 오히려 가을 너는 이어닥칠 추위를 예고하는 불길한 死者에 불과하지. 재수없어. 그러니까 오만을 버려. 네 스스로가 멋지다는 생각을 잊어, 너는 배경에 불과해. 플레임을 가득채울지 몰라. 하지만 피사체의 중심은 네가 아냐. 그녀야. 코스모스에 열광하는 나의 그녀가 너를 배경으로 플레임 안에 들어와야 사진이 완성되듯, 비로소 그렇게 시즌이 완성되는 법이야. 잊지말라구.


이제 겨울로 들어선 2008년이지만 나는 인간의 존엄을 가지고 9월하순무렵, 이른 바 가을이라는 녀석에게 약간의 가르침을 하사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 잘난 체의 원천은 가을 속에 햇살보다도 더 따사로웠던 사람이 내 곁에서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I ador mi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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