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프레시안북 |
나 역시 일본인을 쪽바리로 부르며 경멸하기에 기꺼이 동참하려던 시기가 있었다. 비록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문화적, 자본적 열등감을 해소하는 무리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작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도 또는 제지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라기 보다 내가 그 안에 속해 있기에 자기부정을 할 수 없는 태생적 이유에 더 가까울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무한한 열등의식은 그러한 거친 언어로서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시에 난 어린애였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도 주위에는 여전히 '쪽빨이'이라는 경멸적 수사가 유효했으며 오히려 사리분간을 할 수 있는 나이또래가 지껄이게 되었으므로 그 뜻이 더 강렬해졌다. 요컨대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지껄이는 것과 자본사회에서 열씸히 동력을 공급하게 될 성인이 되고 나서 지껄이는 언사와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사뭇달랐다.
그 무렵의 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해야 하나 아니 일본정부를 수십년째 차지하고 있는 꼴통 우익들을 미워해야하나. 발상 자체가 어리석다. 미워함을 전제로 대상을 나누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 못해 무식해 보이기까지 한다. 일본은 내 미움의 대상이 되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나 따위가 자신을 미워할지 안할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내가 배우기론 일본을 쪽빨이놈들의 왕국으로 치부하면 내 스스로가 격상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도약할 수 있을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욕을 하고 짱똘을 현해탄에 던져봐야 나라와 나라사이의 격차는 자본뿐만이 아니라 의식까지도 멀어지게 되었다. 분발해야 했다.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대체 나는 누군데 일본을 경멸하는가. 그것은 극일의 차원이 아니라 극기의 차원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태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삼성은 한국의 독보적인 대기업이아. 해외에서도 몹시 유명한 기업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쪽빨이와 같은 허접한 단어로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네이밍이 돈성이다. 삼성이 돈성이 된 데에는 여러가지 메타포가 함축되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라 그렇게 부를 리 만무하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별칭일테다. 그 경멸적 수사가 쪽빨이의 그것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도경영을 부르짓는 작금의 그룹경영철학에 흠짓을 가하는 것은 확실하다. 대체 왜일까.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마저도 삼성의 사설 경제팀에게서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받는 시점에 다다른, 때문에 삼성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왜 툭하면 삼성이 뛰쳐나와 무뢰배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보다 죄를 미워하자는 이야기가 품는 메타포는 인간이 저지른 죄 그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죄가 횡행하게된 사회적 여건을 살펴보라는 이야기일테다. 굴지의 첨단 기업인 삼성이 욕을 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오히려 이런 매머드급 기업이 없다는 게 속이 상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나 그 삼성을 몇 %도 안되는 주식조각으로 이리저리 끌어대는 오만방자한 무리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척결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초 괴뢰정권인 고종의 대한제국이 망해도 선량한 백성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았듯이. 수 많은 인력과 그 식구들이 속해있는 삼성이라는 공적(넓은 의미에서) 회사가 잘못된 관행과 오만한 독선을 족벌세습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 중심에 이씨일가과 가신들 (그룹싸운드 이름으로 손색이 없다!)가 있다. 이들, 그룹전체로 보면 단지 몇%밖에 안되는 이 몇 몇에게 그 모든 악습의 끄나플을 쥐게 하는 현 삼성의 시스템에 전복을 주장하는 책이 바로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라는 책이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말 그대로 삼성에서 왕국을 세운 이씨 일가와 그 추존세력을 타도하고 깨끗한 경영으로 미래의 혁신적인 롤모델로 삼성이 커나가길 염원하는 일곱명의 노력들을 담았다. 삼성이 잘 나가는 것은 이들, 이른바 이건희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이름없는 무명의 노동자들때문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삼성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삼성의 라이벌 회사나 삼성 때문에 망한 몇몇 기업의 오너나 직원들 뿐이다. 지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실체를 찾아내 그것을 단죄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유주의가 꽃을 피우려면 이러한 최소한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노조 경영을 선언하고 타 기업 보다 연봉에서 보상한다는 속셈의 뿌리에는 현장 노동자들의 억압이 숨겨져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노조경영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 이씨일가와 그를 추존하는 (추종追從이 아니라 추존推尊이다) 떨거지들이 깨끗하게 2선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은퇴해야 삼성은 비로소 대한민국 피플들의 앙망仰望을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나왔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노동자의 탓이 아니다. 일본을 쪽발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우리보다 못살게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만 쥐어짜봐야 (감원, 감축) 위기가 말끔히 해소 되지 못한다. 97년 한국외환위기와 08년 세계경제위기는 모두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만과 독선에 기인한다. 위기가 올 때마다 항상 다수의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전가시키는 이러한 시스템의 오류는 앞만 보고 질주하는 독선적인 승자독식적 천민자본주의와 그 시스템을 한국형으로 계량하여 대대손손 이어나가려는 이씨일가따위들의 노력 때문이다. 미국에서조차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예고하는 시점에 접어드는 이 어려운 시기에 시대역행적 수사를 거침없이 뿜어내며 나라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호주의를 검토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그런 지극히 당연한 행동 자체를 질타하는 엄청난 대통령을 우린 보유하고 있다. 어둡다. 이 나라에 과연 미래는 있는가. 있다면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거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금 이시간에도 동분서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기립박수를 보낸다.
태그 :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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