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을 처음 만났을 때 유치하게도 이 다 큰 어른은 '까망공주'라는 닉을
쓰고 있었다. 자신의 피부가 타인들에 비해 유난히 까맣단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피부가 백옥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도 그가 다른 여성에 비해 유독
깜장 피부를 소유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지 스스로 거울을
보며 느끼는 졸렬한 자의식이겠지. 하고 무시했었다. 그러나 도대체가 '공주'라는 것에는 납득할
수 없었다. 공주라니. 아님 그럼 내가 지금 신분상승중?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아주머니, 대뜸 나 인제 틸 쓸래. 하더라. 틸? 무슨 틸? 탈이 아니고? 탈을 쓴다는 것은 문장상 완벽하다. 탈을 쓰다. 그런데 틸을 쓰다? 메야 대체? 틸은 TEAL이야. 영어지. 아하. 영어구나. 그렇다면 무슨 뜻인데 뒤집어 쓴다는 이야긴가?
기본이 부족한 나는 가끔 (사실은 몹시 자주) 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틸을 쓴다는 것은 그러니까 '틸'이라는 대화명을 '사용'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틸은 색을 말한다. 기묘한 색이다. TEAL은 also 오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녀는 컬러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래서? 닉을 왜 틸로 썼을까? 내가 그에게 물어보았던가? 물어보았을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라는 게지. 설마 싫어하는 색을 대화명으로 정할까.
나는 별 것 아닌것의 규칙성을 중시하는 인간이다. 예를 들어 대화명은 두 자가 무조건 좋다. 버트, 지나, 애니, 그니, 골룸 등등 두 자가 무조건 좋다. 마음이 안정되고 씨나 짱 따위를 이어 부쳐 발음하면 근사한 세 자짜리 이름으로 완성이 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결국 나는 세 자가 딱 좋은 셈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버트씨, 애니씨, 그니씨, 골룸씨. 하지만 나이와 출신성분(?) 대화명을 쓰는 인간의 보수성에 따라 약간 호칭을 달리 한다. 버트씨, 지나짱, 골룸군 등등. 딱딱 맞아 떨어진다. 나는 이런게 좋다. 이른 획일성에 박수를 보내며 조금은 안심한다. 그런데, 틸이라고? 세상에 한 자잖아. 틸. 이거 아니지, 아냐. 어딘가 불안해. damn insecureness!!! 안정이 안돼. 이름을 늘려야 해. 그래서 처음엔 '티일'이라고 해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호칭접미사였다. 나는 알다시피 '님'을 혐오한다. 님은 독립적으로만 쓰기를 원한다. 가령, 님의 침묵이라는 詩는 님을 제대로 사용했기에 덜 진부했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나면 동네 마트나 백화점에 가보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님'을 남발하는 자본주의 천박한 상술을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의 누구님이 아닌 오직 님만을 독립적으로만 사용하련다.
그러고보니 티일씨, 티일짱, 티일놈(?) 다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무엇보다 틸을 티일로 늘리다보니 내 획일성과 규칙성때문에 애꿎은 블로그 네이버들이 답답해 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든다. 할 수 없이 몇 달(사실은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삼류 한류문화의 결정판으로 한국에서 우스꽝스럽게 왜곡된 '사마 sama 様'를 채택하기에 이른것이다. 様는 물론 겸양을 나타내는 접미사지만 '틸 플러스 사마'라는 이름은 꼭 그런 뜻으로 지었던 것은 아니다. 설명했던대로 3자 작명에 법칙에 따른 일종의 스스로의 합의안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마가 틸과 결합하자 3자의 법칙이 완성되는 것에 나는 주목했다. 보통 버트 + 씨 라고 해서 3자 별명이 완성됨에 기뻐했던 나 아니었던가. 따라서, 틸 + 사마는 좌우가 뒤집히는 점에서 새롭고 3자 작명의 원칙을 고수했다는데서 안심이었다.
틸짜이스는 뭐야 대체? What is the TEAL-ZIESS?
오늘 날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인간들이 안경잡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오히려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쉽다. 일단 나 그리고 잘 모르겠다. 암튼 죄다 안경을 썼다.
어렸을때, 즉 이십대 초반즈음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눈이 나쁜줄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여성은 덜 했다. 상대적이었을까. 암튼, 그래서 여성이 적어도 시력에서는 우월한 존재들인지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맨 눈알 안에 렌즈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나는 경악하게 된다.
사회가 안경을 쓰는 여성에 대해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그 차별의 주체가 안경 쓴 남자라는 점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우리의 틸사마는 시력이 몹시 좋지 않다. 두 번이나 압축을 한 렌즈로 안경을 맞추어야 한다. 안경의 부피를 줄이려면 엄청난 과학적 기술이 투여되어야 하고 그 축적된 과학기술을 시력이 좋지 않은 틸은 월급의 많은 부분을 헐게 만들 만든다. 미용과 사회가 강요하는 시선의 폭력에서 벗어나기위해 틸사마는 하드렌즈를 선택했다. 그리고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이제 그녀의 몸은 생화학적 반응을 이겨낼 만큼 젊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자주 아파 왔다. 편한 대신 눈 건강이 쇄약해져 갔다. 세상은 모두 가질 수 없다. 결국, 안과의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하드렌즈에 사형을 언도한다. 꽝꽝광.
얼마나 아쉬울까. 나는 렌즈 낀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줄 아는 사람들이다. 남들의 시선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세상을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만족이리라. 자기만족. 그것은 게으름뱅이들에게는 힘든 과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05년 대학로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시력이 좋은 사람이기에 아직도 안경 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첫 인상은 내 기준을 빗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시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때는 이미 그런 것 따위가 상대가 가진 호감을 빼앗을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시신경의 다발이 약해졌다. 틸사마는 2009년 드디어 렌즈의 세계에서 탈락한다. 그리고 허탈해 한다. 혹시 스스로 이제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음을 자책하고 있을까 안타까웠다. 나는 그녀에게 안경을 쓰라고 부축였다. 그것은 내게 파격이 아니었다. 나는 틸사마가 안경을 쓰는 주제에 타인의 장애를 탓하는 변별력이 떨어지는 몹쓸 인간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안경을 쓰던 돋보기를 쓰던 내가 그를 나무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가벼운 눈에대한 상식을 접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모르는 곳에 가기전에 전문가를 상대해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내 관념을 흔든다. 사는 게 늘 그렇게 준비적이진 않지만 즉흥적보다는 그래도 여러면에서 우월하다. 단점은 그 준비성이 벼락치기로 이루어져 대개 쓸만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내가 끼어들 차례다. 협잡꾼은 싸구려 질문에 능통해야 한다.
태도 골랐다. 틸이 질문을 이었다.
마지막 순간이 왔다. 깍아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가격을 깍아야 한다. 그게 어렵다. 늘. 틸은 이런 거 못한다. 바보처럼. 마님은 결재용 카드를 들고 뻘쭘히 서서 전체적으로 좀 비싸다 싶은 새 안경 (스스로 밝힌 새 안경 취득 간격은 이십년에 육박한다는 거짓말을!) 때문에 약간 기가 죽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만.
나는 안경잡이가 아니니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정찰제가 아닌 숍에서 조잡하게 손으로 쓴 가격표가 달린 국산 안경의 가격은 십만원이었다. 물건을 살 때 십만원을 깍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테는 원가가 얼마나가지 않는 다는 이야기겠지. 그렇다면 이 아저씨 오늘 봉잡은게로군. 깍지 못하는 안경잡이 여자와 깍을 줄 은 알지만 대체 얼마가 적정가인지 모르는 남자가 이 집 한 주일 매상을 순식간에 올려주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왜 이렇게 장문의 쇼핑기를 쓰는가하면 그것은 결국 틸의 안색 때문일 확율이 높다. 틸은 가격을 지불하기도 전부터 가격흥정이 끝난 후 카드로 결재를 하면서도 몹시 안타까워 했다. 뭐랄까. 비싼 가격의 렌즈를 끼고 다니는 것에 약간 죄책감 비슷한 게 들었을 수도 있다. 양심을 가진 소시민은 자신이 번 돈이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비난할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면 행동에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게 양심이고, 제대로 교육 받은 학습의 결과다.
나는 카메라가 있다. 펜탁스 유저다. 렌즈도 있다. 올 초에 무리를 해서 초음파로 작동되는 이른 바 럭셔리 표준 줌렌즈와 망원 줌렌즈를 구매한 적이 있다. 둘 다 가격이 각각 백만원을 족히 넘는 비싼 제품들이었다. 나 역시 그 렌즈들을 살 때 가슴이 저렸다. 왜 안그랬겠나. 일단 이 돈이면 뭐뭐뭐 할텐데의 쓰잘데기없는 IF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저 싸구려 렌즈 여러개 중고로 사고 나머지로 화끈하게 틸의 겨울 아이템을 질러줘? 하는 고민도 잠깐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하지만, 틸이 구매한 독일의 압축렌즈는 결국 없으면 생활이 곤란한 필수품이다. 그것은 옷과 같은 상품과는 또 다를 것이다. 내가 안경을 쓰지 않는 인간이기에 정확히 진단해내기는 어렵지만 결국 기호라기 보다 기능에 대한 신뢰를 값으로 환산하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과 갈등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비록 그 비싼 초음파 렌즈들을 처분하고 아날로그 시대의 구식 싸구려 렌즈 몇 개와 펜케이크 렌즈 한 개만 남겼지만 별반 후회는 없다. 그것은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취미였고 결국 취미가 특기에 이르는 실력향상을 동반하지 않는 지출이었다해도 말이다. 결국 취미는 그런 것 아닌가. 자기만족 말이다. 눈이 나빠 초고굴절의 압축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비구면에 유리알에 독일제로 한다고 해서 양심에 흠짓이 난다면 나 같은 요컨대 절대로 필요치 않은 물품을 사고파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리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틸을 짜이쯔라는 고유명사와 혼합에 복합고유명사로 불러준다고 해서 그것이 럭셔리 렌즈를 구매한 자를 비꼬는 제스츄어라고 여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듯 장문의 설명문을 동봉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What is the TEAL-ZEISS? 의 전설을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아주머니, 대뜸 나 인제 틸 쓸래. 하더라. 틸? 무슨 틸? 탈이 아니고? 탈을 쓴다는 것은 문장상 완벽하다. 탈을 쓰다. 그런데 틸을 쓰다? 메야 대체? 틸은 TEAL이야. 영어지. 아하. 영어구나. 그렇다면 무슨 뜻인데 뒤집어 쓴다는 이야긴가?
- 너 바보지!
- 넌 바보 애인이냐 그럼!
- 여기서 쓰다는 wear가 아니야. use지. 이 바부 멍충아!
- 앗. 그렇구나.
기본이 부족한 나는 가끔 (사실은 몹시 자주) 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틸을 쓴다는 것은 그러니까 '틸'이라는 대화명을 '사용'하겠다는 이야기였다.
- 그렇구나.
- 그래.
- 근데 무슨 뜻인데?
틸은 색을 말한다. 기묘한 색이다. TEAL은 also 오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그녀는 컬러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래서? 닉을 왜 틸로 썼을까? 내가 그에게 물어보았던가? 물어보았을수도 아닐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라는 게지. 설마 싫어하는 색을 대화명으로 정할까.
* * *
나는 별 것 아닌것의 규칙성을 중시하는 인간이다. 예를 들어 대화명은 두 자가 무조건 좋다. 버트, 지나, 애니, 그니, 골룸 등등 두 자가 무조건 좋다. 마음이 안정되고 씨나 짱 따위를 이어 부쳐 발음하면 근사한 세 자짜리 이름으로 완성이 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결국 나는 세 자가 딱 좋은 셈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버트씨, 애니씨, 그니씨, 골룸씨. 하지만 나이와 출신성분(?) 대화명을 쓰는 인간의 보수성에 따라 약간 호칭을 달리 한다. 버트씨, 지나짱, 골룸군 등등. 딱딱 맞아 떨어진다. 나는 이런게 좋다. 이른 획일성에 박수를 보내며 조금은 안심한다. 그런데, 틸이라고? 세상에 한 자잖아. 틸. 이거 아니지, 아냐. 어딘가 불안해. damn insecureness!!! 안정이 안돼. 이름을 늘려야 해. 그래서 처음엔 '티일'이라고 해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호칭접미사였다. 나는 알다시피 '님'을 혐오한다. 님은 독립적으로만 쓰기를 원한다. 가령, 님의 침묵이라는 詩는 님을 제대로 사용했기에 덜 진부했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나면 동네 마트나 백화점에 가보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님'을 남발하는 자본주의 천박한 상술을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의 누구님이 아닌 오직 님만을 독립적으로만 사용하련다.
그러고보니 티일씨, 티일짱, 티일놈(?) 다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무엇보다 틸을 티일로 늘리다보니 내 획일성과 규칙성때문에 애꿎은 블로그 네이버들이 답답해 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든다. 할 수 없이 몇 달(사실은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삼류 한류문화의 결정판으로 한국에서 우스꽝스럽게 왜곡된 '사마 sama 様'를 채택하기에 이른것이다. 様는 물론 겸양을 나타내는 접미사지만 '틸 플러스 사마'라는 이름은 꼭 그런 뜻으로 지었던 것은 아니다. 설명했던대로 3자 작명에 법칙에 따른 일종의 스스로의 합의안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마가 틸과 결합하자 3자의 법칙이 완성되는 것에 나는 주목했다. 보통 버트 + 씨 라고 해서 3자 별명이 완성됨에 기뻐했던 나 아니었던가. 따라서, 틸 + 사마는 좌우가 뒤집히는 점에서 새롭고 3자 작명의 원칙을 고수했다는데서 안심이었다.
틸짜이스는 뭐야 대체? What is the TEAL-ZIESS?
오늘 날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인간들이 안경잡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오히려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쉽다. 일단 나 그리고 잘 모르겠다. 암튼 죄다 안경을 썼다.
어렸을때, 즉 이십대 초반즈음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눈이 나쁜줄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여성은 덜 했다. 상대적이었을까. 암튼, 그래서 여성이 적어도 시력에서는 우월한 존재들인지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맨 눈알 안에 렌즈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나는 경악하게 된다.
- 어째서?
- 안경을 쓰는 여자에 대한 편견.
- 정말?
- 그리고 내 스스로도 안경을 쓰지 않음 더 멋지다 싶어서.
- 그래?
- 무엇보다도 얼굴 위로 걸리적 거리지 않아서 편해.
사회가 안경을 쓰는 여성에 대해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그 차별의 주체가 안경 쓴 남자라는 점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우리의 틸사마는 시력이 몹시 좋지 않다. 두 번이나 압축을 한 렌즈로 안경을 맞추어야 한다. 안경의 부피를 줄이려면 엄청난 과학적 기술이 투여되어야 하고 그 축적된 과학기술을 시력이 좋지 않은 틸은 월급의 많은 부분을 헐게 만들 만든다. 미용과 사회가 강요하는 시선의 폭력에서 벗어나기위해 틸사마는 하드렌즈를 선택했다. 그리고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이제 그녀의 몸은 생화학적 반응을 이겨낼 만큼 젊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자주 아파 왔다. 편한 대신 눈 건강이 쇄약해져 갔다. 세상은 모두 가질 수 없다. 결국, 안과의는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하드렌즈에 사형을 언도한다. 꽝꽝광.
- 눈이 많이 아파?
- 그것도 그거지만 시신경 다발이 많이 손상되었데.
- 오랜 세월 끼고 살았던 결과가 결국 그런거군.
- 당신은 눈 좋은 거 감사해야해.
- 나는 내가 살아 있는게 기적이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이거 왜이래.
- 하하하.
얼마나 아쉬울까. 나는 렌즈 낀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줄 아는 사람들이다. 남들의 시선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세상을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만족이리라. 자기만족. 그것은 게으름뱅이들에게는 힘든 과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05년 대학로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시력이 좋은 사람이기에 아직도 안경 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첫 인상은 내 기준을 빗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시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때는 이미 그런 것 따위가 상대가 가진 호감을 빼앗을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 당신은 안경 쓴 여자를 싫어하잖아.
-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는 안경 쓴 인간을 좋아하지 않지.
- 어째서?
- 음. 사적인 이유야.
- 알아. 설마 당신에게 남한 사람들의 공통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봐? 말해봐. 왜인지.
- 언젠가 뉴스를 봤어.
- 응.
- 그곳에는 한 무리의 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어. 일종의 프로테스탄트지. 그러면서 공사장 트럭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봉쇄하는 시위였어. 장애인 시설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려던 부지였나봐. 그런 시설은 우리들에게 언제부터인지 혐오시설이 되었을까. 그들은 전날 밤부터 지키고 앉아서 공사차량의 진입을 막고 관계자에게 욕을 해대며 공사를 저지 하며 투쟁하고 있었어. 가장 강렬했던 시위자가 마침 티비의 인터뷰를 하더라. 격앙된 목소리로. 왜 여기냐고. 안된다고. 다른 데다 만들라고.
- 혹시 그 중년 여성이 안경을 쓴 게 아니야?
- 응.
- 에? 뭐야 안경을 쓴 여자가 장애인 시설을 중단하는 시위에 적극 가담한 게 싫어서 모든 안경 쓴 인간들이 싫어졌다? 말도 안돼.
- 흠.
- 뭔가 다른 게 더 있는 거 아냐?
- 글쎄. 어쨌거나, 나는 눈이 좋아. 눈이 몹시 좋거든. 그렇기에 어찌보면 당신 같은 마이너스의 시력을 가진 사람이 장애인으로 보여.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때론 우월하게도 생각해. 달리 내세울만한게 없으니 내 유전형질을 스스로 찬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당신동족인 안경인간들을 위한 촌락을 만들고 그들을 위한 - 그러니까 나처럼 시력 좋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 복지시설을 만든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해. 집값이 떨어져도 상관 안 해. 집 값보다는 삶이 우선이니까. 그 정돈 나도 알아. 하지만 장애시설을 반대하는 열혈지역주민은 시력이 좋지 않았어. 만약, 이 사회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소수고 그들을 반대로 시력 좋은 인간이 못살게 군다고 생각해보란 말이지. 얼마나 삭막하겠어. 장애인의 고통은 스스로 장애아를 생산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짐승이 아니잖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어. 집값이 떨어지더라고 그들이 살 곳을 박탈한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야. 눈이 나쁜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에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장애인들에게 그렇게 굴면 안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속이 많이 상했어. 왜 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할까. 하고 말이지.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논리가 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야. 만약, 장애인 시설이 자신의마을에 들어서기를 거부하려면 적어도 충치조차 없는 마을이어야 가능하다고 믿어. 습진이나 무좀에 걸린 사람 한 명이라도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런 반대에 자유로울수 없어야 해. 그게 인간과 짐승의 다른 점이라고 나는 믿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살아갈테야.
* * *
시신경의 다발이 약해졌다. 틸사마는 2009년 드디어 렌즈의 세계에서 탈락한다. 그리고 허탈해 한다. 혹시 스스로 이제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음을 자책하고 있을까 안타까웠다. 나는 그녀에게 안경을 쓰라고 부축였다. 그것은 내게 파격이 아니었다. 나는 틸사마가 안경을 쓰는 주제에 타인의 장애를 탓하는 변별력이 떨어지는 몹쓸 인간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안경을 쓰던 돋보기를 쓰던 내가 그를 나무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동네에서 할까?
- 남대문이잖아? 안경하면 일본사람들도 남대문을 찾는다던데.
- 싸니까?
- 글쎄.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가벼운 눈에대한 상식을 접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모르는 곳에 가기전에 전문가를 상대해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내 관념을 흔든다. 사는 게 늘 그렇게 준비적이진 않지만 즉흥적보다는 그래도 여러면에서 우월하다. 단점은 그 준비성이 벼락치기로 이루어져 대개 쓸만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 눈이 몹시 나쁘시군요.
- 네.
- 줄 곳 하드 렌즈를 끼셨나요?
- 네. 의사가 자제하라고 해서요.
- 그래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더블압축을 해도 유리렌즈로 끼울수가 있습니다.
내가 끼어들 차례다. 협잡꾼은 싸구려 질문에 능통해야 한다.
- 호야가 좋아요.
- 니콘이 좋다던데요.
- 니콘도 좋지요. 하지만 역시 렌즈하면 독일입니다. 짜이쯔가 좋지요.
- Carl Zeiss?
- 그 중에서도 눈이 사모님은 눈이 몹시 안 좋기 때문에 란탈을 하셔야 해요.
- 사모님?
- 네.
- 흠, 초고굴절이로군요.
- 그냥 고굴절렌즈인 티탈이나 푼크탈은 안되나보죠?
- 안됩니다.
-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 어쩔 수 없습니다.
- 남대문은 어떨까요?
- 그들은 칼 짜이쯔를 취급할 수 없습니다.
- 왜죠?
- 저처럼 라이센스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짜이쯔는 취급점이 따로 존재하기에 싸게 할 수 없습니다. 남대문에 물량을 공급하지 않는 이유도 결국 가격하락을 막기 위한 상술인게죠.
- 나루호도!
태도 골랐다. 틸이 질문을 이었다.
- 국산이 좋다죠?
- 좋습니다.
- 서전은 어때요?
- 오래 전에 망했습니다.
- 헉.
마지막 순간이 왔다. 깍아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가격을 깍아야 한다. 그게 어렵다. 늘. 틸은 이런 거 못한다. 바보처럼. 마님은 결재용 카드를 들고 뻘쭘히 서서 전체적으로 좀 비싸다 싶은 새 안경 (스스로 밝힌 새 안경 취득 간격은 이십년에 육박한다는 거짓말을!) 때문에 약간 기가 죽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만.
- 가격 좀 잘해주세요.
- 잘 해드릴께요.
- 정말요?
- 일단 테 값은 안 받겠습니다.
- 오.
- 렌즈 값만 받겠습니다.
- 오.
나는 안경잡이가 아니니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정찰제가 아닌 숍에서 조잡하게 손으로 쓴 가격표가 달린 국산 안경의 가격은 십만원이었다. 물건을 살 때 십만원을 깍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테는 원가가 얼마나가지 않는 다는 이야기겠지. 그렇다면 이 아저씨 오늘 봉잡은게로군. 깍지 못하는 안경잡이 여자와 깍을 줄 은 알지만 대체 얼마가 적정가인지 모르는 남자가 이 집 한 주일 매상을 순식간에 올려주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

틸짜이쯔는 사실 안경을 쓰면 몹시 구엽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장문의 쇼핑기를 쓰는가하면 그것은 결국 틸의 안색 때문일 확율이 높다. 틸은 가격을 지불하기도 전부터 가격흥정이 끝난 후 카드로 결재를 하면서도 몹시 안타까워 했다. 뭐랄까. 비싼 가격의 렌즈를 끼고 다니는 것에 약간 죄책감 비슷한 게 들었을 수도 있다. 양심을 가진 소시민은 자신이 번 돈이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비난할지도 모르는 생각이 들면 행동에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그게 양심이고, 제대로 교육 받은 학습의 결과다.
나는 카메라가 있다. 펜탁스 유저다. 렌즈도 있다. 올 초에 무리를 해서 초음파로 작동되는 이른 바 럭셔리 표준 줌렌즈와 망원 줌렌즈를 구매한 적이 있다. 둘 다 가격이 각각 백만원을 족히 넘는 비싼 제품들이었다. 나 역시 그 렌즈들을 살 때 가슴이 저렸다. 왜 안그랬겠나. 일단 이 돈이면 뭐뭐뭐 할텐데의 쓰잘데기없는 IF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저 싸구려 렌즈 여러개 중고로 사고 나머지로 화끈하게 틸의 겨울 아이템을 질러줘? 하는 고민도 잠깐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하지만, 틸이 구매한 독일의 압축렌즈는 결국 없으면 생활이 곤란한 필수품이다. 그것은 옷과 같은 상품과는 또 다를 것이다. 내가 안경을 쓰지 않는 인간이기에 정확히 진단해내기는 어렵지만 결국 기호라기 보다 기능에 대한 신뢰를 값으로 환산하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과 갈등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비록 그 비싼 초음파 렌즈들을 처분하고 아날로그 시대의 구식 싸구려 렌즈 몇 개와 펜케이크 렌즈 한 개만 남겼지만 별반 후회는 없다. 그것은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취미였고 결국 취미가 특기에 이르는 실력향상을 동반하지 않는 지출이었다해도 말이다. 결국 취미는 그런 것 아닌가. 자기만족 말이다. 눈이 나빠 초고굴절의 압축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비구면에 유리알에 독일제로 한다고 해서 양심에 흠짓이 난다면 나 같은 요컨대 절대로 필요치 않은 물품을 사고파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리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틸을 짜이쯔라는 고유명사와 혼합에 복합고유명사로 불러준다고 해서 그것이 럭셔리 렌즈를 구매한 자를 비꼬는 제스츄어라고 여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듯 장문의 설명문을 동봉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What is the TEAL-ZEISS? 의 전설을 그렇게 시작된다.
'Vert : Yeah.
Teal : Is everything in place?
'Vert : You weren't supposed to relieve me.
Teal : I know, but I felt like taking your shift.
'Vert : You like it, don't you? You like watching it.
Teal : Don't be ridiculous.
'Vert : We're going to buy it, do you understand that?
Teal : The clerk believes it is The One.
'Vert : Do you?
Teal : It doesn't matter what I believe.
'Vert : You don't, do you?
Teal : Did you hear that?
'Vert : Hear what?
Teal : Are you sure this line is clean?
'Vert : Yeah, 'course I'm sure.
Teal : I'd better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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