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S.AURAny
안녕하세요.
아침에 귀찮은 전화를 받고 눈이 떠졌습니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자려던 것을 포기하고 습관적으로 컴을 부팅했지요.
메일을 읽고나서 리더로 간 밤에 업데이트 된 단골 블로그들의 새로운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유난히 글다운 글이 눈에 뜨이더군요.
아울여사의 글이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리플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리플이 너무 길더군요.
그곳에는 아울여사의 지인들이 많이들 찾아오는 블로그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아울여사의 지인의 거의 찾아오지 않은 내 블로그에 편지형식을 빌어
의견을 피력해보면 아울여사에게 별로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제 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만한 가치나 충격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긴 답글은 오히려 피곤할지도 모를테니까요.
사람들이 '개인적'이라는 말을 구태여 개인인 자신이 쓰면서 늘어 놓는 것은
결국 자신이 평소엔 개인적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적인 삶을 딱히 동경해서가 아니라 남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 때문일테지요.
하지만, 인간들 하는 짓거리들 유심히 관찰하면 그들은 늘 개인적으로 삽니다.
개인적으로 행동하고
그 어느 누구도 이타적이고 사회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강조한다고해서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개인적인것과 또한 이기적인 것은 다릅니다.
개인적인것은 말 그대로 '나' 적인것입니다.
인디비쥬얼이죠. 그곳 언어로.
in + dividual 즉, 더 이상 쪼갤수 없다는 뜻이네요.
분열자가 아닌이상 인간은 최소 단위이고 최종 단위입니다.
그것이 개인입니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그냥 최소 단위적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기주의와는 차별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것은 좀 다르네요.
구태여 자신이 앞으로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40년을 겪어 본 결과 인간은, 인간은 전부 이기적입니다.
이기란 결국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이야깁니다.
돌아보세요.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쫓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이기의 양의 차이거나 질투의 차이겠죠.
양의 차이.
아마도 부자들이 지탄받는 것은 타인들보다 이익을 훨씬 많이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질투를 의미하니까요.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이익을 추구에 정통한 사람들에 대한 무능한 개인의 원통함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이익과 손해를 동시에 추구한다거나
손해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분야에서 알려지기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기의 추구입니다.
출세란 결국 타인의 등을 타고 넘어가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고독한 섬에서는 출세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출세한다. 라는 듯은 이기적이 되었다. 와 같은 의미로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직 자아에 눈을 뜨지도 못한 어린 계집 a girl 의 성적표 공란에
아이가 이기적이라고 쓴 선생도 결국 이기적인 계집 a bitch 일 뿐입니다.
만약, 그 선생이 아이들을 전부 사랑한다면 서슴없이 아이와 부모에게
상처를 줄 단어를 쓸 수가 없었을테지요.
저는 그 옛날 아울여사의 담임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은 담임이었음을 지적하는 겁니다.
이른 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해들이 이기적인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셔서 잘 알지 않나요?
세상에 아이들처럼 본능에 충실한 피조물들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양 손에 핫도그를 들고 있어도 삼촌이 들고 있는 핫도그가 탐이나
앙탈을 부리는 게 아이들의 본성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타고 난 본성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인간이 나이가 들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쑥스러운 것이라고 학습받게 되어
결국 감출줄 아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지
탈이기적인간으로 환골탈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indivisual 의 습관이나 행동을 감추는 invisible 것이 성인일테지요.
성인들이 즐비한 인간사회에서 그것이 마치 무슨 덕목인양 선전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 역시 이기적인 행동양식의 소산일 뿐입니다.
자신의 이기를 숨기는 행동도 결국 타인의 존경과 사랑을 이끌어 내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질척'한 느낌의 인간관계가 싫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간혹 온도차를 느낀 '질퍽'한 인간들이 차갑다고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온도의 차이일뿐입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이기의 정도차가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사람들을 '차이'를 알게되고
그럼으로서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될 터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격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때때로 자신의 블로그에서 자아비판을 하게 되는 족속들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온도차가 나는 자신의 이기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 용서는 앞으로 달라지겠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쪽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울여사 힘들어 할 필요없습니다.
당신이 어느 모임이나 코리안 쏘사이어티 또는 교회무리들에게
그러니까 차이를 구별못하는 사람들의 차별에 고통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인간은 전부 다르다. 라는 가벼운 명제를 깨닫지 못하는 세상의 종말이 바로
나찌 독일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무수히
다른 타인들을 격리해 죽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 바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사건 아닙니까?
세상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구속복에 자신을 구겨넣고 그것에 맞추어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타인들도 전부 구속복 straitjacket 을 입고 불편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아울여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게 live my life 아닙니다.
자신을 아는 것 know you are 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울여사는 자신의 이기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이기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들을 나무라며 그들의 이기만을 지적하며 삶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기를 깨달은 순간 unplugged 우리는 비로소 냉정해집니다.
나를 둘러 싼 모든 게 가식임을 알아 챕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껏 타인의 이기를 나무라는 어리석은 삶을 산 게 아니라
자신이 왜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됩니다.
이제 그만 두세요.
스스로를 그만 갈구세요.
나 역시 사람을 사귈때 화이부동和而不同 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람은 오리려 필요할 때마다 간, 쓸개를 턱턱 꺼내 놓는
표리부동 表裏不同 한 사람들입니다.
2009년도 밝았습니다.
앞으로는 아울여사가 이미 깨어 있는 자신을 그만 탓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바마가 D.C에 입성해 동네가 어수선 할지도 모르겠군요,
추운데 각별히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버트 올림.
추신 : 읽어나서 눈곱도 안 때고 쓴 글이라 엉망진창입니다. 죄송.
그나저나 역시 안경잡이다 보니 틸짜이쯔가 무엇인지 냉큼 알아 맞추셨구료.
아, 그리고 그거 아오? 내 성적표 공란엔 늘 이렇게 써 있었다오.
"주위가 산만하고 장난이 심합니다. 가정에서의 주의가 요망됩니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귀찮은 전화를 받고 눈이 떠졌습니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자려던 것을 포기하고 습관적으로 컴을 부팅했지요.
메일을 읽고나서 리더로 간 밤에 업데이트 된 단골 블로그들의 새로운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유난히 글다운 글이 눈에 뜨이더군요.
아울여사의 글이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리플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리플이 너무 길더군요.
그곳에는 아울여사의 지인들이 많이들 찾아오는 블로그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아울여사의 지인의 거의 찾아오지 않은 내 블로그에 편지형식을 빌어
의견을 피력해보면 아울여사에게 별로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제 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만한 가치나 충격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긴 답글은 오히려 피곤할지도 모를테니까요.
사람들이 '개인적'이라는 말을 구태여 개인인 자신이 쓰면서 늘어 놓는 것은
결국 자신이 평소엔 개인적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적인 삶을 딱히 동경해서가 아니라 남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 때문일테지요.
하지만, 인간들 하는 짓거리들 유심히 관찰하면 그들은 늘 개인적으로 삽니다.
개인적으로 행동하고
그 어느 누구도 이타적이고 사회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싫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강조한다고해서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개인적인것과 또한 이기적인 것은 다릅니다.
개인적인것은 말 그대로 '나' 적인것입니다.
인디비쥬얼이죠. 그곳 언어로.
in + dividual 즉, 더 이상 쪼갤수 없다는 뜻이네요.
분열자가 아닌이상 인간은 최소 단위이고 최종 단위입니다.
그것이 개인입니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그냥 최소 단위적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기주의와는 차별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것은 좀 다르네요.
구태여 자신이 앞으로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40년을 겪어 본 결과 인간은, 인간은 전부 이기적입니다.
이기란 결국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이야깁니다.
돌아보세요.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을 쫓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이기의 양의 차이거나 질투의 차이겠죠.
양의 차이.
아마도 부자들이 지탄받는 것은 타인들보다 이익을 훨씬 많이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질투를 의미하니까요.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은
이익을 추구에 정통한 사람들에 대한 무능한 개인의 원통함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이익과 손해를 동시에 추구한다거나
손해만을 추구하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분야에서 알려지기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기의 추구입니다.
출세란 결국 타인의 등을 타고 넘어가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고독한 섬에서는 출세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출세한다. 라는 듯은 이기적이 되었다. 와 같은 의미로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직 자아에 눈을 뜨지도 못한 어린 계집 a girl 의 성적표 공란에
아이가 이기적이라고 쓴 선생도 결국 이기적인 계집 a bitch 일 뿐입니다.
만약, 그 선생이 아이들을 전부 사랑한다면 서슴없이 아이와 부모에게
상처를 줄 단어를 쓸 수가 없었을테지요.
저는 그 옛날 아울여사의 담임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면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은 담임이었음을 지적하는 겁니다.
이른 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해들이 이기적인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셔서 잘 알지 않나요?
세상에 아이들처럼 본능에 충실한 피조물들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양 손에 핫도그를 들고 있어도 삼촌이 들고 있는 핫도그가 탐이나
앙탈을 부리는 게 아이들의 본성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타고 난 본성이라고 이야기 하지요.
인간이 나이가 들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쑥스러운 것이라고 학습받게 되어
결국 감출줄 아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지
탈이기적인간으로 환골탈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indivisual 의 습관이나 행동을 감추는 invisible 것이 성인일테지요.
성인들이 즐비한 인간사회에서 그것이 마치 무슨 덕목인양 선전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 역시 이기적인 행동양식의 소산일 뿐입니다.
자신의 이기를 숨기는 행동도 결국 타인의 존경과 사랑을 이끌어 내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질척'한 느낌의 인간관계가 싫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간혹 온도차를 느낀 '질퍽'한 인간들이 차갑다고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온도의 차이일뿐입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이기의 정도차가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사람들을 '차이'를 알게되고
그럼으로서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될 터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격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때때로 자신의 블로그에서 자아비판을 하게 되는 족속들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온도차가 나는 자신의 이기의 용서를 구합니다.
그 용서는 앞으로 달라지겠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쪽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울여사 힘들어 할 필요없습니다.
당신이 어느 모임이나 코리안 쏘사이어티 또는 교회무리들에게
그러니까 차이를 구별못하는 사람들의 차별에 고통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인간은 전부 다르다. 라는 가벼운 명제를 깨닫지 못하는 세상의 종말이 바로
나찌 독일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 무수히
다른 타인들을 격리해 죽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 바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사건 아닙니까?
세상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구속복에 자신을 구겨넣고 그것에 맞추어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타인들도 전부 구속복 straitjacket 을 입고 불편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아울여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게 live my life 아닙니다.
자신을 아는 것 know you are 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울여사는 자신의 이기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이기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인들을 나무라며 그들의 이기만을 지적하며 삶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기를 깨달은 순간 unplugged 우리는 비로소 냉정해집니다.
나를 둘러 싼 모든 게 가식임을 알아 챕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껏 타인의 이기를 나무라는 어리석은 삶을 산 게 아니라
자신이 왜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됩니다.
이제 그만 두세요.
스스로를 그만 갈구세요.
나 역시 사람을 사귈때 화이부동和而不同 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람은 오리려 필요할 때마다 간, 쓸개를 턱턱 꺼내 놓는
표리부동 表裏不同 한 사람들입니다.
2009년도 밝았습니다.
앞으로는 아울여사가 이미 깨어 있는 자신을 그만 탓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바마가 D.C에 입성해 동네가 어수선 할지도 모르겠군요,
추운데 각별히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버트 올림.
추신 : 읽어나서 눈곱도 안 때고 쓴 글이라 엉망진창입니다. 죄송.
그나저나 역시 안경잡이다 보니 틸짜이쯔가 무엇인지 냉큼 알아 맞추셨구료.
아, 그리고 그거 아오? 내 성적표 공란엔 늘 이렇게 써 있었다오.
"주위가 산만하고 장난이 심합니다. 가정에서의 주의가 요망됩니다."
댓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