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기

세상 2009/01/08 17:00 Posted by 버트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옥수에서 내렸다. 출근 길은 지루하게도 늘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홀린 듯이 허겁지겁 계단을 오른다. 빌어먹을 싸구려 중앙선은 친절하게도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다리 성한 젊은(!) 총각인 나로서는 아직은 계단씩 오를 수 있을정도로 슬두가 멀쩡한 편이다. 그러나 무리한 근육량은 슬두에 부하가 걸리기 딱이므로 자제하며 계단을 오른다. 하나 둘, 속으로 구호를 불러가며 지루하지 않게 천천히.

그런데 정체다. 속도가 안난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틸짜이쯔보다 반보 정도 느린 스피드의 인간이다. (나는, 나 나름의 도보법이 있는 인간이기에 우리 둘이 정상적인 데이트는 늘 삐뚤빼뚤이기 쉽상이다. 나란히 걷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사실 좁은 도로에서 나란히 걷는 것은 마주보고 걷는 보행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나보다 느린 당신은 누구냐. 고개를 든다. 아이엄마와 꼬마다. 그럼 그렇지. 아이의 숙성정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젊은 애엄마는 등에 커다란 애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추운 겨울에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그래도 겨울 아닌가. 포대기에 속에서 가득 잠들어 있는 애기. 애를 업은 이 여성은 양손도 바쁘다. 처다보기에도 무거운 짐이 가득한 손가방이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니 첫째로 보이는 애는 지 엄마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애를 쓰면 아장댄다. 서 있으면 자기 가슴팍까지 솟구친 계단을 어른의 가이드 없이 혼자 오르다니 이 얼마나 대견하고 또한 가련한가.

순간적으로 손을 내 밀어 아이를 폴짝 들어올려 계단 정상까지 후다닥 뛰어 올려다 주고 싶은 충동이 확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액션이 아니다. 나, 타인이 생산한 아이를 함부로 만지는 것이 몹시 부자연스러운 나이에 접어 들었다. 아이가 계단을 오르는 속도는 나에게 약간 느렸지만 그 아이의 세상에선 몹시 빠른 속도였다. 채 자라지도 않은 슬두연골이 어긋날까봐 걱정이 앞섰지만 아이는 벌써 생존을 위해 스타트 라인을 끊어 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애를 둘러 업고 양 손에 하나 가득 짐을 든 애 엄마와 그의 첫째 아이의 꽁무늬를 밟으며 생각한다. 같은 시각 가족을 위해서 구입했다는 히터 빵빵한 4인용 세단에 홀로 앉아 새로 산 네비게이션 PMP에서 울려퍼지는 오락방송 DMB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개나소나 차를 사서 길이 갈수록 너무 막힌다고 거래처 여직원과 전화로 농을 주고 받는 남자가 혹시 이 세 명의 보호자이자 가장이라고 으스대는 사람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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