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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탄생 - 
나임윤경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어제 타인의 블로그에 리플을 흘리기 위해 수
년전에
읽었던 이 책을 인용했다. 그리고나니 새삼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지
않았던 게 떠오른다. 그래서 알라딘을 방문해 책 정보 보기를 끌어
오려고
하던 차에 랜덤 독자들의 리뷰가 보인다. 그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몇
자
옮겨본다.
(중략) 술술 읽히는 내용에 비해 알맹이는 시원치 않았다. 저자의 좁은 인간관계(대학원 학생들, 저자의 비슷비슷한 고학력, 중상계층의 친구들 등)의 사례로 모든 이 땅의 여자를 들먹이며 여자의 탄생을 운운해도 되는지는 이책의 주요 독자층이 여대생으로 한정이 된다면 용납이 되는 것일까?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이
랜덤 독자가 고스란히 공감하고 있었다. 이것은 꼭 여성주의만의 딜렘마가 아니다.
내가
궁금해 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총제적 특성이기도 하다. 특정 계층이
모든
세대를 아우를수 있는가. 이 점에 나 역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386으로 대표되는 세대가 민주화를 앞당겼다고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동년배의 모든 이가 386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386은 그들 몇몇을
다루는
상징적인 이름에 불과하다. 시대적 대표성은 권력을 가진 자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주의는 여성주의를 학문으로 발전시키려는 무리들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최근 이 나라의
경제가
어렵다고 정치가, 경제학자, 지식인들이 모두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그들의 시야안에서만 작동한다. 여성주의가 미치지 않는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도시빈민으로 대표되는 무산계급이 경제논리로 보면 일반 서민들의 시각과도 맞물린다.
따라서,
실물경제에 뛰어 들지 않고 그들을 관리, 감독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경제계발과 부흥에 관한 이론과 실천들은 늘 서민에게는 공허한 립써비스로만
들리게
마련인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노력으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지 반세기밖에 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잘 배우고 잘 먹는 계층만이 여성주의의
수혜를
받고 있지 않지만 비루한 현실이 우릴 그렇게 발언하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서민들에게
새로 발표되는 경제정책이 공허하게 들리듯이 여성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이 땅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자칫 그들만의 리그로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닌지 긴 호흡을 가져할
시기로
삼고 분발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지금 이 글은
대체
이 책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