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 탈성매매자들의 이야기들

2009/01/15 13:14 Posted by 버트
축하해 - 10점
박금선 지음,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기획/샨티

20세기가 십 년 남짓 남았던 이른 바 세기 말에 어느 날 나는 고민에 빠진다. B동의 어느 주택 안 작은 마당을 개조해 만든 단독(?) 건물에 세들어 살던 내 수중에 결국 천 원권 한 장 박에 남지 않았던 것. 나는 내 일생에 참 기억에 남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늦잠을 자서 아침을 걸렀더니 점심때가 되자 배가 고팠던 것. 나는 고민을 했다. 당시 천 원이면 辛라면을 두 봉이나 구입할 수 있었다. 두 봉이라, 낮에 하나 끓여 먹고 저녁에 하나 더 끓여 먹음 그럭저럭 오늘 하루는 지나가겠네. 극단적인 베짱이인 나로서는 다음 날 끼니걱정은 커녕 오히려 웃기는 고민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동네 점방에 들려 나온 내 손에 든 물체는 라면 두 봉이 아니었다. 바로 담배였다. 배가 고픈데도 담배를 사 온 이유는 담배는 하루가 아니라 아껴피면 며칠은 족히 입을 달래줄 진정한 베짱이적 식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몹시 어렸고, 찢어지게 궁핍했지만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자유의지를 획득하는 게 중요했다. 요컨대, 밥 대신 담배를 필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그런 정신나간 초이스를 두고 어느 누구도 비난의 짱돌을 던지지 않는 환경이 더 없이 좋았다.

물려 받을 재산이라곤 내 이름밖에 없었던 철저한 무산계급의 총각이 여유롭게 담배를 꼬나물고 츄리닝에 난닝구 차림에 차가운 방바닥에 걸터 앉아 허파꽈리 깊숙히 타르를 빨아대던 꼬락서니를 지금 생각해봐도 웃음이 날 정도로 어이가 없다만 뭐 후회도 없다. 그때는 그럴수밖에 없었다. 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에 서툴다. 그렇기에 주변인이 있으면 내 괴로움이 쉬이 전달된다.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만 고민하는 인간들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고통은 늘 금방 내 몸에서 발산된다. 이런 나를 세상에선 문제아내지는 루져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굻어죽지 않을 자신감에서 비롯된것이라기보다 타고난 낙천주의가 큰 역할을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낙천주의는 죽기야 하겠냐. 가 아니라 죽어도 할 수 없지 뭐. 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올바르게 작동된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 스스로의 개인적인 발전을 저해했는지 어쩐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낙천주의는 결국 타고난게 아니라는 점을 굉장한 시간이 흐른 나중에 나는 간신히 깨닫는다. 낙천주의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결국 삶을 비관하기에 나는 내 스스로가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런 점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심리를 잠 재웠으며 그 효과는 지금도 유효한 셈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허나 내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남자라는 사실. 그것도 신체건강한. 대한남아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몸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달리 말하면 하층 무산계급 출신 여성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지는 성매매전선에 뛰어들 필요까지는 없었음을 뜻한다. 무엇보다도 가계를 이어야 하는 잘난 큰 오빠나 몰락한 집안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죽기 살기로 재봉질을 하고 대부분의 수입을 집으로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벌어도 집안은 여전히 붕괴직전의 몰락한 가부장계 왕조와도 같은 음산함이 감돌뿐이다. 게다가 주변의 또래들이 척척 좋은 옷과 좋은 학교에 뜻을 두는 꼬락서니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평생 짝퉁을 걸치며 스스로를 그들과 비교하는 삶에 시달려야 하는 삶. 그 삶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뿐인 가난만이 특기이자 자랑인 젊은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렇다. 나는 정확히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것이 가져다주는 포만감을 만끽하고 살아갔던 것이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끔찍한 속에서 간신히 탈출한 이들의 담담한 삶을 읽기 편하게 엮어 낸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새롭다. 라면 살 푼돈조차 없었어도 이유없이 당당했던 젊은 날을 처음으로 반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가진것 없이 태어 난 삶을 비난하지 않는 대범함을 키우고 그러한 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딱 그게 내 한계였다. 세상엔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그 모든 주변인들의 처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나는 21세기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여성주의자가 되기를 자처한 이유는 그러한 자기만족으로 희화된 내 인생에 참 된 의미를 타인의 삶에 투영하고 싶은 졸렬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요컨대 나는 나를 구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여성과 내가 이런 책에서 만나는 여성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간극이 놓여져 있다. 나는 그 간극을 메꾸려고 많은 책을 읽고 또 그들의 이야기들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선택했다. 벌어진 격차와 그 간극이 줄어들어야 비로서 내가 바라보는 여성이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여성주의의 궁극적인 시각이다. 여성은 모두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좋다. 그들이 말하는 삶을 통해서 내 부박한 삶을 비춰보고 싶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여성들중 한 여성의 이야기인 '나는 이정표가 될래요' 는 특히나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정상 앞으로 1.5km의 글자가 인쇄된 팻말처럼 늘 그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고 싶다는 그녀. 그녀에게 누군가 평생 정상엔 오르지 못하고 자리에 서서 정상으로 가는 길만 소개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는 범인에게 해맑게 미소짓는 그녀. 해탈은 오랜 시간 수련한 스님에게서만 이루어지는 무슨 큰 업적이나 훈장이 아니다. 단지 성매매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그 반열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아침 5:30에 일어난다고. 물론 일어나는게 너무 힘들지만 반드시 일어나 산에 오르고 자신이 준비한 밥을 먹는다고 말이다. 업소에서 성매매를 할 때는 새벽에 잠들어 오후 늦게 눈을 떠 쓰린 속을 주방이모가 차려주는 맛없는 음식으로 달래며 살았다는 그녀. 그녀가 지금 새벽같이 눈을 떠 자신의 의지로 산에 오르고 자신의 의지로 아침을 해 먹는 것이 자유라는 것을 알았다고.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고. 그렇게 그녀는 내 부박한 삶에 커다란 진리를 던저주었다.

비단 그녀 혼자만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여성들의 의지에 우리가 누리고 있지만 잘 깨닫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담겨져 있다. 나는 진리들을 하나하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 역시 그녀들처럼 열반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게으른 나, 갑자기 일찍 일어나고 싶어졌다. 나도 그녀처럼 내 의지가 올바르게 작동되는지를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감사하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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