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相玄 - 여자, 정혜를 만나다.

영화 2005/09/21 16:40 Posted by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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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 (The Charming Girl, 2005)


예술 영화라고? 어려울 것도 없는 영화이다. 보면 그만인 영화랄까. 나름대로 지루하지도 않다. 애써 외면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정혜곁으로 바투 다가 앉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내가 영화를 후배(남자 -_-;;)랑 보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부산 국제 영화제 이후로 흘러나오는 소문이 나의 유난히 얇아터진 귀를 간지럽게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탤런트 김지수가 영화 배우 김지수가 되었다는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를 수도 있는 그러니까, 나는 분명 영화배우 김지수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일이지만 영화계는, 연기를 좀 아는 여배우 명을 잃었던 아픈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이번 외출이 반갑다.) 나는 연기를 하는 연기자를 좋아한다. 그런 배우가 연기를 펼쳐 보이는 영화를 몹시 좋아한다. 같은 말이지만 난, 연기를 할 줄 모르는 연기자를 싫어한다. 그런 배우가 국어책을 낭독하는 컴컴한 극장 안에서의 두 시간을 굉장히 싫어한다.

배우, 지수. 탤런트 김지수는 안정된 연기를 작은 브라운관 앞에서 늘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다. 굉장한 미인도 아니고, 연예 뉴스의 화제가 될 나이도 아니며, 본인에게는 귀찮은 표현이겠지만 혼기를 놓친지 흘러버린, 그런 여인. T.V를 보지 않는 나에게는 어쩌면 이젠 기억 속에서 점점 소멸되어갈 그런 존재. 하지만, 그녀는 나의 기억을 재생 시킨다. 탤런트가 아닌 영화배우. 아니, "연기자"로 확대 재생산되어 스크린 데뷔를 한 것이다. 호우.

여자, 정혜. 일이 끝난 후의 텅빈 메가박스. (정확히 세 보았다. 후배와 나를 포함해 열 다섯명.) 같은 라인에 앉은 정체불명의 날날이 4인조.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난 5분후까지 재잘 재잘. 빌어먹을. 하지만,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 할 필요도 없이 이내 영화속, 아니 정혜의 일상속으로 녹아든다. 그녀는 여리다. 그녀는 단조롭다. 그녀는 조용하다. 그녀는 특이하다. 분명, 그녀는 ''어떤'' 상쳐가 있다. 우리는 그 정도의 가벼운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시간에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그녀가 단조롭고, 조용하고, 특이하고, 분명 어떤 상쳐가 있는지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여자, 정혜. 나는 답답해진다. 그녀는 홈쇼핑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의 일상속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지 않은 뿐이었다. 그녀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을 깨기 위한 자명종소리가 아니다. 특이하다. 어떤면이?

정혜 : 담배 이리로 내 뿜어봐.
동료 : 왜?
정혜 : 그런게 좋아. 옆에서 맡는 거.
동료 : 이 애 정말 특이해.

왜일까? 그리고, 그녀의 상쳐. 내가 가해자가 아님을 고맙게 생각한다. 아니, 내가 그녀와 다른 성(sex)를 소유하고 있는 게 불편해 진다. 그녀가 이쪽을 응시할 때, 시선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일까. 그토록 심한 짓을 하고 어떻게 아침 운동따위를 하고 벤치에서 숨을 몰아쉴 수 있을까. 안타깝다기보다, 화가 난다. 아니, 화가 난다기 보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떠오른다.

여자, 정혜. 공중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울고 있는 그녀가, 남을 상쳐주기 위해 비수를 꺼내 들어도 결국, 자신에게 상처로 주고 말 여린. 어떤 여자.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하지 않았지만, 끝남과 동시에
나는 정혜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랬다. 아니, 바라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후배 : 에이, 끝이 왜 이래요?
버트 : 뭐가?
후배 : 그래서?
버트 : 세상에는 이런 마무리도 있는 거야.
후배 : 음.
버트 : 지루했구나.
후배 : 아뇨, 괜찮았어요.
버트 : 얼.
후배 : 단지 라스트가.
버트 : 뭐. 꼭 라스트에 주인공이 56명의 이름모를 엑스트라 악당을 죄다 일본도로 반토막을 내야만, 그리고 웅장한 엔딩 타이틀 곡이 흘러야만 영화가 마무리 되는 것은 아냐.
후배 : 히히히.

그녀가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아니면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과정 그도 아니면 그저 그런 삶의 반복성에 짓눌려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고양이를 버린 씬만 빼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고양이들. 몇 일 살다보니까 느끼는 것이지만, 녀석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분명 내가 보스지만 그들은 내가 보스이길 원치 않는다. 정혜도 그렇다. 세상에 모든 강한 사람이 그녀의 적이고 그녀가 약자이기에 구원을 원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구원을 받는 것에 별 다른 관심이 없다. 여자, 정혜가 공중화장실에서 느꼈던 것이 바로 이런 진리가 아닌가 싶다. 그것을 깨닳은 감독과 그녀가 새침떼기 같이 생겨먹은 "빠른등기" 그 녀석이 서툴게 말한 관계의 리어레인지(rearrange)에 빨리 답하지 않고 서둘러 영화를 종결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 그것도 약자인 인간들이 무관심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일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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